파묘, 그 날의 이야기
고향 선산 파묘(破墓)하는 날이다. 아침 8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성격 급하신 작은 큰아버지의 닦달로 부천에서 큰집 가족들이 7시 전에 도착했다. 오늘 일하는 업체 사람들이 도착하기 한참 전이었다. 7시에 산신제(山神祭)를 지내기로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작은 큰아버지가 “계수씨(季嫂氏) 건강도 안 좋은데 왜 혼자 고생시키냐!”며 큰집 사촌 형들을 들볶았다고 한다.
선산 가는 길, 작은 큰아버지가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내가 말한다고 하고 자꾸 깜빡깜빡하다 이제사 말하는데, 찬샘아.”
“네?”
“아니 너 말고. 찬새미 애비야.”
“네.”
“내가 너한테 유언하나 할 테니까 잘 들어. 나 죽으믄 화장할 거 아니냐. 그럼 딴 데 말고 오늘 엄니 아부지 뿌린 데다 뿌려라. 형 유언이다 생각허고 잘 기억했다가 그렇게 해.”
“아이고 아주버님.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이런 말은 건강하고 정신 온전할 때 해야지, 다 죽어가믄 이런 거 챙길 정신이 있겠어요, 어디? 찬새미, 너도 들었지?”
작은 큰아버지는 내게도 다짐을 받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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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를 끝내고 다 같이 점심을 먹을 때였다.
“아이고. 이제 우리 언제 이렇게 다 모이죠? 도련님 결혼식 때나 모일라나?”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우리 집안 다 잘됐어! 나는 이제 찬새미 결혼하는 거만 보면 끝이여.”
“접때 여자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잘 됐으면 진작 연락 했것지.”
“잘 안 된 겨?”
“몰러유.”
작은 큰아버지의 일성(一聲)을 필두로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이건 내게 말을 거는 것도 안 거는 것도 아니다.
“찬샘아. 내가 보니께, 일본 여자 괜찮더라. 학식도 있고, 교양도 풍부하고 사람이 예의가 발러. 한 번 만나봐. 무슨 교회 다니면 만난다던데?”
“통일교요?”
“응. 맞다, 거기!
아…! 작은 큰아버지! 제가 개종을 생각할 정도로 만날 사람이 궁하지는 않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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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꼭 좋은 사람 만날 겨. 다 잘 될 겨.”
헤어지기 전, 사람들이 내 손을 꼭 붙들고 주문을 외우듯 덕담을 전했다.
“네. 감사합니다. 좋은 소식 있으면 연락드릴게요.”
산자락을 타고 불어온 바람이 자꾸 모자를 벗기려고 했다.
여름이 성큼 다가온, 5월의 마지막 일요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