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신을 쫓은 도깨비 ]



‘곳집’은 상여와 장례에 쓰는 제구를 보관하는 곳으로 대개 마을 외곽이나 산자락에 있다. 그곳의 물건을 찾는 때가 좋은 날과 거리가 멀다 보니 마을 사람들은 그 근처에 가기를 꺼렸다.

동네 어르신이 돌아가셔서 곳집을 찾아야 했다. 하필이면 곳집 관리를 맡았던 감여가(堪輿家) 어르신의 초상이어서 이번에 누가 곳집 관리를 맡을지 의견이 분분했다. 한 번 맡게 되면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자신에게 미룰 게 분명하기에 서로 눈치만 보고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마지막 날 밤, 자의 반 타의 반 외할아버지에게 그 일이 떨어졌다. 손재주가 좋다는 이유였다.

담이 큰 사람도 밤에는 그 을씨년스러운 장소에 혼자 가지 못한다. 외할아버지가 남포등을 들고 앞장서고 친구들이 뒤를 따랐다. 그믐이라 그런지 더 캄캄한 밤이었다.

한참을 걸어 곳집에 당도했다. 빗장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데, 뒤에서 누군가 “흐이이익!” 바람 빠지는 소리를 하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왜 그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자 친구가 사시사무 떨 듯 손을 벌벌 떨며 한 곳을 가리켰다. 적삼과 바지를 입고 머리를 풀어 헤친 여자가 상여에 종이꽃을 달고 있었다. “누…, 누구여!”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눈, 코, 입이 없었다.

“으아아악!”
“손각씨다!”

외할아버지와 친구들은 혼비백산 사방으로 뛰었다. 외할아버지는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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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외할아버지의 꿈에 곳집에서 봤던 여자가 나타났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데, 친구네 집 대문에 상여를 장식하는 종이꽃이 달려있었다. ‘이게 뭐여.’ 이상하다 싶어 대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적삼과 바지를 입은 여자가 사랑방 문고리에 꽃을 매다는 중이었다.

“누구여! 왜 재수 없게 남의 집 문을 꽃상여로 만들어!”

여자가 손을 멈추고 외할아버지를 빤히 쳐다봤다. 그 여자였다. 곳집에서 봤던 그 여자, 손각씨의 얼굴에 낭패가 서렸다. 이상한 일이다. 눈도 코도 입도 없는, 이목구비를 갖추지 못한 그냥 둥근 얼굴 형태일 뿐인데, 점점 화가 차오르는 게 보였다. 분하고 화난 표정으로 한참을 씨근덕거리더니 어느 순간 스윽 사라졌다.

“참 요상한 꿈도 다 있네.” 외할아버지는 눈을 뜨자마자 친구를 찾아갔다. 꿈 얘기를 전하고 요량껏 행동하라고 말해줄 참이었다. "계셔유?" 문을 연 친구 어머니는 태평했다.


“어제 장에 가서 안즉 안 왔어.”
“야?”
“지 삼춘네서 자고 첫차 타고 온댔으께 이따 오겄지. 왜? 뭔 일 있는 겨?”
“아니유. 그럼 어여 긴지 드셔유.”

전기도 안 들어오는 산골에 전화가 있을 리 만무했다. 답답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해가 몸집을 줄이며 성큼성큼 남쪽으로 걸었다. 쭈그리고 앉아 김을 매는데 친구가 밭으로 찾아왔다. “찾았대미?” 외할아버지는 꿈 이야기를 했다.

“어쩐지…, 야, 나 니 덕분에 살았나 부다.”
“왜?”
“오늘 뻐스 탈라구 신작로를 건너는데, 차가 갑자기 달겨드는 겨. 나한테 원한 있는 놈처럼 막 내가 피하는 대루 쫓아오잖어. 뒤지는 줄 알았어.”
“왜 그랬댜?”
“쁘레끼가 고장 났댜. 사람 없는 대루 피한다는 게 나를 박을 뻔한 겨.”

친구에게 별일 없어 다행이었지만, 뭔가 찝찝했다. 꼭 똥 싸고 뒤를 안 닦고 나온 것 같았다.

 

--- ** --- ** ---



자다가 깼다. 첫닭이 울지도 않았는데, 밖이 환했다. '이상허다.' 외할아버지의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자리끼를 들이켜고 문을 열고 나갔다. 마을회관 앞 공터에서 큰불이 치솟고 있었다. ‘뭔 일이랴.’ 혹시 몰라 물 한 바가지 가져가려고 우물에서 물을 긷는데 줄을 당겨도 당겨도 두레박이 올라오지 않았다. ‘안 되겄다. 일단 회관으로 가봐야것다.’

누가 마을회관 앞에 화톳불을 놓았다. 장작이 많지도 않은데 불이 이상하게 컸다. 가까이 다가가자 거구의 사내가 불 앞에 앉아있었다. 지저분한 머리를 대충 묶어 상투처럼 틀었고 적삼과 바지는 훌훌 접어 올렸다. 살에는 털이 수북해서 도깨비를 연상시켰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사내였다.

“아니, 이러다 불내키믄 워쩌려구 불을 이래 키운대유.”
“걱정 붙들어 매유. 불 안 나유.”
“그게 어디 그짝 맘대루 돼유? 바람 한 번 불믄 그냥 훅 가는 겨. 불똥이 어디까지 날러 가는 줄 알어유? 이 불이믄 서울까지두 가것네.”
“괜찮어유. 다 지가 조절하고 있슈.”
“아무리 조절해도 그렇지 풍운조화가 어디 사람 심으로 돼유? 그짝 동네는 워따두고 왜 여기 와서 그런댜.”
“여기가 우리 동네유.”
“야?”

외할아버지는 어이가 없었다. 생판 처음 보는 사내가 우리 동네를 자기 동네라고 주장하다니! 아무래도 안 되겠다. 가까이서 보니 불이 너무 컸다. 불 높이가 한 2m쯤은 되는 것 같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일단 물을 길어다 놓아야겠다.’ 서둘러 집으로 가는데, 외할아버지 집 대문에 곳집의 그 여자, 손각씨가 꽃을 매달고 있었다.

“아줌니! 뭐 하는 겨!”

손각씨가 외할아버지를 보고 씨익 웃었다. 눈도 코도 입도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얼굴이 조소를 지었다. 오싹! 등에 소름이 돋았다. ‘막아야 한다. 못하게 해야 한다.’ 뛰었다. 징용에 끌려가 배 쫄쫄 굶다가 왜놈들이 선착순 3명에게 감자 하나씩 주겠다고 달리기를 시켰을 때보다 더 빠르고, 더 악착같이! 그런데 아무리 달려도 집에 닿지 않았다. 저 앞이 바로 우리 집인데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도 닿을 수 없었다. 삐이걱 손각씨가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문고리에 매달린 종이꽃이 천천히 흔들렸다.

뒤에서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렸다. 불 앞의 사내였다. 화톳불과 거리가 꽤 되는데, 바로 등 뒤에서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기가 어디유?”
“야? 아까 말했잖어유. 우리 동네유.”
“그니까. 그짝 동네가 어디냐구유.”
“아니, 우리 동네가 우리 동네지 딴 동네가 있나. 지가 와놓구선 왜 묻는댜.”

낄낄대는 웃음에 화톳불이 일렁였다.

“그럼 이게 꿈이유, 생시유?”
“꿈도 아니구 생시도 아니구, 그류.”
“나 집에 못 가유?”
“그짝 맘대루 와놓구선 그걸 왜 나헌티 물어유.”

걸음을 되돌려 마을회관 앞, 화톳불 앞에 섰다.

“워뜨카믄 집에 갈 수 있어유?”
“몰러유.”

어디선가 또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불 앞의 사내가 아니었다. ‘누가 더 있나?’ 싶어 고개를 휘휘 둘러봤지만, 화톳불의 환한 불빛이 닿는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럼 안 되는 겨.”
“뭐가유.”
“길 잃은 길손이 길을 물으믄 길을 알려주지는 못 해두 놀리고 그러믄 쓰겄슈?”
“아니, 내가 뭘 워쨌다고 그래유. 내가 오랬슈? 입은 삐뚤어졌어두……”

꼬르륵!
사내의 뱃속에서 우레가 쳤다.

“배고퍼유? 밥 줘유?”
“큼! 흠! 누가 배고프대유?”

꼬르륵!

“뭐 좋아해유?”
“나는 뭐…, 다 좋은데…, 메밀묵이믄…….”
“알었슈. 술은유?”
“술은 탁주믄….”

팟! 화톳불에서 튀어나온 작은 불똥이 불가를 뱅뱅 돌다 사람으로 변했다. 사내와 똑같이 생겼는데, 체구는 그 반도 못 했다.

“탁주는 무슨 탁주여! 청주가 좋지!”

외할아버지는 깜짝 놀랐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메밀묵하고 탁주, 청주 갖고 오믄 되쥬? 근데…, 내가 집에 가야 준비를 할 텐데…….” 말을 흐렸다.

“내가! 예전부터 기분이 나빴어!”

화톳불에서 튀어나온 사내가 갑자기 화를 냈다. 팟! 또 다른 사내가 화톳불에서 나왔다.

“맞어! 메밀밭 밀은 것도 다 그년이 야료를 부려서 그런 겨!”
“혼내주자!”
“혼내주긴 뭘 혼내줘! 쫓아내야지!”
“그려! 은제하까?”
“밥 먹고!”

크고 작은 세 사내의 고개가 외할아버지를 향했다.

“힘을 쓰려면 배가 든든혀야지!”
“맞어!”

한 마디 뱉을 때마다 목의 울대뼈가 오르락내리락했다. 연신 침을 삼키는 모습이 우스웠다.

 

--- ** --- ** ---



화톳불에서 튀어나온 두 사내가 외할아버지 양손을 잡고 집까지 데려다줬다. 아까 혼자서 그렇게 달렸을 때는 가도 가도 끝이 없었는데, 지금은 열 발자국도 안 걸렸다.

“묵하고 술은 해 떨어지믄 대문 앞에 둬유.”
“밤에 누가 불러두 절대루 나오믄 안 돼유.”
“맞어. 문도 열지 말어유. 그냥 눈 딱 감고 천자문이나 외워유.”

낄낄대며 멀어지는 작은 사내 둘을 배웅하고 대문을 닫고 사랑방 문을 여는 순간, 눈이 떠졌다. 너무나 생생한 꿈이었다. 문을 열고 나서니 마당에 안개가 자욱했다.

외할아버지의 꿈 얘기에 외할머니는 마음이 급했다. 가가호호 문을 두드려 메밀가루를 구하고 광에서 술을 떠냈다. 묵을 쒀서 대야에 가득 담아 대문 앞에 내놓고 술도 탁주, 청주 따로따로 주전자에 담아 상을 차렸다.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 남폿불 켜놓고 기다리다 설핏 잠이 들었을 때, 쨍그렁! 장독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문을 여는데, 어? 문이 열리지 않았다. 서로를 욕하는 고함이 시끄럽게 오가고 와장창! 뭔가 무너져 내렸다. ‘뭐여.’ 문은 여전히 요지부동 꼼짝을 안 했다. ‘워뜨카지?’ 답답했다.

“오빠! 오빠! 나유. 문 좀 열어봐유.”

멀리 시집간 여동생의 목소리였다. ‘어? 얘가 왜 왔지? 무슨 일 있나?’ 애가 탔다. 덜그럭, 쿵! 덜그럭, 쿵! 문을 열려고 용쓰는데, 여동생이 다시 말했다.

“으이구! 오빠! 문을 밀어야지! 땡기믄 어뜨케유.”

아하! 왜 그걸 몰랐지? 문에 양손을 얹고 힘껏 밀려는 순간, “안디야~!” 누군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어제의 꿈이 밀물처럼 쏟아졌다. 정신이 들었다. 동생은 세상을 떴다. 바로 작년에!

“너, 누구여!”

끄아아악! 쿵! 쩡그렁!
누군가의 비명과 무엇인가 부서지고 무너지는 소리에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날, 한 집의 그 많은 가족 누구도 밤의 소란스러움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대문 밖의 술과 묵도 그대로였다. 킁! 킁! 냄새도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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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누구나 마찬가지로 미망에 빠지기 마련이여. 근데 거기서 워뜨케 빠져나오냐, 그건 나도 몰러. 내가 못 나왔는데, 누구한테 이야길 하긋냐. 근데…….”

외할아버지의 강론이 시작되었다. 한번 시작하면 세 시간이다. 어머니가 외할아버지의 말을 끊었다.

“엄니. 엄니도 도깨비 봤다고 허지 않았어유?”
“나? 나는 음…, 그게 도깨빈지 뭔지…, 아직도 모르겄어.”
“해줘유.”
“에? 할머니도 도깨비 봤어요?”
“아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니께.”
“해주세여~”

탁! 탁! 화로에서 불똥이 튀었다. 동생과 나는 무서워서 슬그머니 이불속으로 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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