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기, 2일 차(2022. 10. 17), 「아쿠아리움 제주」

 

 

어머니 모시고 제주도로 여행 간다.’, ‘어디가 좋냐.’는 내 물음에 친구들은 저마다 여행지를 추천했다. 거론된 빈도수가 높은 장소는 두 곳. 하나는 내일 가기로 한 쇠소깍이고, 다른 하나는 제주도에 있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수족관 아쿠아플라넷 제주.

 

십 년 전, ‘아쿠아플라넷 여수에 갔었다. 광양에 살 때인데, ‘여수 엑스포로 동네가 들썩이던 나날이라 그 분위기에 휩쓸려 아부지와 동생과 큰 조카와 함께 갔다. 휴가철이어서 평일에도 엑스포를 찾는 관광객들로 도시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가 방문을 부추기던 시절이어서 감기가 아직 안 떨어진 작은 조카까지 데리고 주말의 여수 엑스포를 방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머니가 작은 조카를 데리고 집에 남았다. 그렇게 방문한 아쿠아플라넷 여수는 뙤약볕 아래에서 두 시간여를 줄 서서 기다릴 만큼 신기하지도 재미있지도 알차지도 않았다. 좁은 공간에 가득 들어찬 사람들로 인해 관람도 여의찮았고 무엇보다 공기가 너무 탁했다.

 

하여, 이번 여행 추천지 중에서 제일 먼저 배제했던 곳인데, 생각해 보니 역병의 창궐로 여행객이 줄었다 하고, 비수기 시즌이라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동식물을 좋아하시는 어머니가 좋아할 것 같았다. 그래, 수족관으로 가자!

 

오빠! 인터넷으로 예매하면 할인해 준대!”

 

변기에 앉아 사색 중이었는데, 산발에 눈이 반쯤 감긴 동생이 화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매제가 여기저기 검색해 보다 출근 전에 동생에게 전화해서 알려준 모양이다.

 

? 오빠 똥 누고 이쏘오? 마저 일 봐. 히힛!”

 

 

 

 

씻고 나와서 표를 예매했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설거지하는 사이 동생과 어머니는 꽃단장했다. 동생이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 어머니는 이른 아침 비몽사몽 출근 준비하는 동생을 앞에 앉히고 머리를 말리고 정성 들여 화장을 해주었다. 오늘은 사회에서 제법 자리를 잡은 동생이 어머니의 얼굴에 곱게 화장품을 바르고 미스트를 뿌린다. 백구과극(白駒過隙)이라. 내 마음은 여전히 열 살, 스무 살 그때쯤인데, 문득 돌아보니 세월은 부모님의 얼굴에, 몸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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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에서 동으로 동으로 달려 성산에 닿았다. 점심을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 제주에 왔으면 무조건 갈치지! 바람 부는 제주에는 말도 많지만, 맛도 좋고 영양도 좋은 갈치구이 많지요. 은갈치 은갈치…….”

 

점심은 무조건 갈치라고 동생은 성산에 닿기 전부터 노래를 불렀다. 혹시 나 몰래 한잔한 건 아닐까? 맨정신에 이런 텐션이 나올 수 없는데?

 

 

 

 

맛은 평범했다. 알던 맛이다. 다리 없는 고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생선은 고등어나 임연수어 정도만 먹는다. 어머니가 프라이팬에 구워 준 그 맛은 아니었지만, 비리지 않고 잔가시가 많지 않아서 먹기 좋았다. 어머니도 편하고 기분 좋게 식사하셨는데, 아마도 집도는 내가 하지라는 심정으로 가시를 바른 동생의 노고 덕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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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많이 불었다. 매표소에 문의해서 휠체어를 대여하고 서둘러 입장했다.

 

 

 

 

비수기의 평일, 사람은 생각보다 많았다. 가족 단위 관광객보다 학생 단체가 많았는데, ‘예나 지금이나 수학여행의 성지가 제주도구나.’ 싶었다.

 

 

 

 

불면증으로 선잠을 잔 탓인지, 젊음의 에너지를 한껏 분출하는 학생들의 소음이 자장가처럼 들렸는지 아니면, 휠체어의 은은한 진동이 몸을 나른하게 했는지 어머니는 쏟아지는 졸음을 이겨내지 못했다. ‘물결처럼 퍼지는 핏줄 속으로 수많은 고기들이 헤엄치는 그곳. 파란 바다 맥박 같은 해조음의 리듬, 날숨 들숨 교차하는 고동 구름 같은 귀를 두드리는 그곳'[각주:1]에서 동생과 나는 뭔가 재미있어 보이는 것이 눈에 띄면 어머니를 깨웠다.

 

아쿠아리움 관람의 마지막 코스는 특별공연이라 명명된 일종의 서커스였는데, 얼마나 흥미로웠던지 어머니의 잠이 다 달아나 버렸다. “어머! ~ ~” 묘기가 펼쳐질 때마다 내뱉은 어머니의 감탄사는 오늘 들었던 그 어떤 말보다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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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서귀포 올레 시장에서 사 온 족발. 나와 동생은 맥주를 곁들였고 어머니는 사이다를 드셨다.

알코올이 들어가자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내 흑역사를 동생이 끄집어냈다. 어머니와 동생이 미친 듯이 웃었다. 어제도 그러더니만……. 에효. 나도 언젠가 이 인간의 흑역사를 풀어내며 웃을 날이 있겠지. ‘군자보구(君子報仇) 십년불만(十年不晩)’이라 했다. 각오해라!

 

 

  1. 채호기, ‘너의 등’, 밤의 공중전화, 문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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