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가기 전 한참 막일 아르바이트를 할 때의 일입니다.

언제부터인지 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꼬마애가 일하는 곳을 계속 얼쩡거렸습니다. 눈이 마주치면 도망가서 숨고 눈이 마주치면 도망가서 숨고 그러기에 그저 부끄럼이 많은 아인가보다 생각하고 말았지요.

 

가끔가다 용기를 내서 다가오면 어김없이 같이 일하는 분들의 호통이 터졌습니다. 아무리 시골의 개인주택을 짓는 일이라지만 건축 현장이란 곳은 아이들이 놀기에는 위험한 장소였거든요. 호통 소리에 찔끔 놀라서 후다닥 도망갔다가 또다시 얼쩡대곤 했습니다.

 

어느 날인가 새참을 먹고 다들 잠깐 쉬고 있을 때였습니다.

새참으로 빵이 나왔습니다. 빵을 좋아하지 않는지라 우유 한 개 들고 한쪽으로 빠져서 담배를 피워물었습니다.

 

늘 눈만 마주치면 도망가서 숨곤 했던 아이가 무슨 생각인지 살그머니 다가왔습니다.

 

"아저씨, 그 우유 드실 거예요?"

"? ?"

"그냥요."

 

요 녀석이 우유가 먹고 싶은가 보구나, 어차피 먹을 생각도 없던 우유를 아이에게 건넸습니다. "빵도 줄까?"라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제 몫으로 나왔던 빵도 가져다주었습니다.

 

가끔 새참으로 빵이나 오리알 등이 나올 때가 있었는데, 그때 그 꼬맹이는 어김없이 다가왔고 전 무슨 대단한 선심을 쓰는 척 새참으로 나온 것들을 그 아이의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보물이라도 품은 양 종종걸음으로 신이 나서 달려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큰 선행을 한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지요.

 

타는듯한 햇살이 머리 위에서 내리쬐던 어느 점심때였습니다.

점심을 먹고 다들 짓다 만 건물 안으로 종이 박스를 들고 들어가 누워 잠깐 쉴 때였습니다. 저도 쉬려고 그늘을 찾아 박스를 들고 나서는데 그 꼬맹이가 보였습니다. 보통 세시가 조금 넘어야 찾아오는 녀석인데 그날따라 일찍 찾아온 게 이상해 손짓을 해서 불렀습니다.

 

몇 살이냐고 물으니 아홉 살이요.” 그럽니다. “오늘은 일찍 왔네? 학교에서 끝나고 바로 온 거야?”

라고 물으니 아니요. 학교 안 갔어요.”, “?”', “동생 때문에요.”, “동생 때문에?”, “동생이 아파서요”…….

 

옆에 꼬맹이를 앉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버지는 집 짓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아침 일찍 밥상을 차려 놓고 일을 나가면 일어나서 동생 밥을 먹이고 학교에 간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돌아올 때 길목 어귀에서 놀고 있는 동생을 집에 데리고 온다더군요. 엄마는 미국으로 돈 벌러 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아빠가 밥을 안 차려 놓고 나가서 동생이 밥을 못 먹는다네요.

 

아빠가 집에 들어올 때, 일할 때 준거라며 늘 빵을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마침 동네에서 집 짓는 공사를 하고 있고 아저씨들은 빵을 안 먹으니까 몇 개 달라고 하려고 그동안 공사장을 맴돌았다는 거였습니다. 가끔 제가 빵과 우유를 주면 집에 가서 동생이랑 나눠 먹었다고 조심조심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날은 아침부터 동생이 자꾸만 토해서 학교에 못 갔다고 했습니다. 약은 먹었냐고 묻자, ‘아빠가 아침에 까스활명수 먹으라 해서 먹었다.’지금은 괜찮다.’고 하더군요.

 

새참으로 국수나 라면이 나올 때가 있었습니다. 공사장을 맴도는 꼬맹이를 불러서 같이 먹으려 해도 도통 오지를 않았었는데 그때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가끔 나오는 빵과 우유를 주면 그 자리에서 먹는 것이 아니라 품에 안고 종종걸음으로 신이 나서 뛰어가던 이유를 알았습니다.

 

꼬맹이 손을 꼬옥 붙잡고 구멍가게에 들렀습니다.

후줄근한 작업복을 입고 동네 꼬마 손을 붙잡고 들어서는 저를 구멍가게 할아버지가 이상하게 쳐다봅니다. 시골 동네의 구멍가게가 그렇듯이 과자나 빵이 듬성듬성 있었고 음료수는 미지근합니다. 돈이 되는 대로 이것저것 집어 비닐봉지에 넣고 아이의 손에 들려주었습니다.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걸어가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드는 꼬맹이의 머리 위로 눈부시게 햇살이 부서졌습니다. 길이 꼬부라지는 모퉁이에서 녀석이 뭐라고 소리를 치는데 시끄러운 매미 소리 때문에 무슨 소린지 들리지 않습니다. 갑자기 뜬금없이 사물이 흐려집니다.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 그런가, 쓰윽 눈을 닦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