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산학원에 다녔다. 다른 아이들은 병설 유치원에 가거나 형이나 누나를 따라 속셈학원에 다녔는데, 나는 주산학원에서 주판을 놓고 덧셈·뺄셈을 배웠다. 주산을 배우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막연한 믿음 때문인데, 거기에는 아마도 일찍 한글을 깨친 아들을 신동으로 여겼던 어머니의 기대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검지와 중지 약지 사이에 연필을 끼고, “준비!”라는 말 뒤에 쏟아지는 “5원이요, 6원이요, 12원이요….” 숫자의 나열에 열심히 엄지와 검지로 주판을 튕겼다. 계산이 끝나면 일제히 학원 선생의 입에 시선이 모였고 그가 불러주는 정답에 탄식과 환호가 엇갈렸다.

 

불행히도 나는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냥 들어도 계산이 되는데 왜 주판을 사용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 했기 때문이다. 숫자를 들으며 주판을 사용하는 척하다가 얼마?” 하는 소리에 정답을 튕겼다. 한 박자 느린 손은 금세 티가 났고 학원 선생은 내가 계산한 척 자신을 속인다고 생각했다. 큰 반에서 작은 반(수 계산을 잘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모아 놓은 반)으로 밀려났다. 거기는 ‘2+3’ 따위의 한 자릿수 덧셈·뺄셈을 가르쳤는데, 당연히 따분해서 딴생각하는 일이 잦았다.

 

그때 학원 아이들의 가장 큰 화제는 솜사탕이었다. TV에서 한참 방영되던 솜사탕 광고를 두고, ‘어떤 맛일까?’ 말의 향연이 벌어졌다. 한 녀석이 우리 형이 운동회 할 때 먹어 봤는데, 입에서 막 녹는대.” 말을 꺼내면, “우리 언니는 소풍 가서 한 입 먹어봤는데, 무지 맛있었대!” 맞장구를 쳤다. 분명 맛있다고는 하는데, 무슨 맛인지 감이 안 왔다. 궁금하기는 한데, 호기심 차원에서 사기엔 100원은 너무 큰 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찬샘!” 어머니가 나를 불러 앉혔다. 이름에 성까지 붙여 부른 걸 보면, 내가 뭔가를 잘못한 것이 분명했다.

 

너 학원에서 왜 자꾸 딴짓해! ?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돈 벌어서 네 뒷바라지하는데, 네가 그렇게 하면 돼, 안돼!”

 

학원비 내러 학원에 오셨다가 내 이야길 들으신 모양이다. 어째 원장 샘이랑 이야기할 때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 게 이상했었다.

 

재미가 없어서요.”

왜 재미가 없어? ? 엄마가 너 공부 가르치느라 얼마나 힘든지 알아, 몰라?”

알아요.”

그러면 네가 그렇게 하면 되겠어, 안 되겠어?!”

근데…, 진짜루 재미가 없어요. 왜냐하면…….”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갔다. 자신의 말에 항상 .”라고 대답하던 아들이 자꾸 말대답하자 어머니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괜찮아. 엄마 너 혼내키는 거 아니야. 크게 말해봐.”

그냥 답이 나오는데, 자꾸 주판 쓰라고 하잖아요. 으앙~”

 

울음이 터졌다. 끅끅대면서 설명했다. 문제 들으면 그냥 답이 생각난다. 주판을 왜 쓰는지 모르겠다. 주판을 쓰면 오히려 더 헷갈린다. 글씨 쓰기 시간에도 아버지’, ‘어머니이런 쉬운 것만 쓰라고 한다. 한참 내 이야길 듣던 어머니가 조용히 물었다.

 

“5 더하기 6은 뭐야?”

“11이요.”

“12 더하기 16?”

“28이요.”

 

깜짝 놀란 어머니가 계산기를 가져왔다.

 

“135 더하기 239?”

“374.”

“2547 빼기 1326?”

“1221이요.”

 

그날 어머니 손을 붙잡고 40분을 걸어 다시 주산학원에 갔다. 덧셈 뺄셈을 암산으로 해내자,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던 학원 선생들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집에 돌아올 때 어머니가 물었다.

 

우리 아들 뭐 먹고 싶어?”

솜사탕이요!”

솜사탕?”

! TV에 나왔어요! 애들이 그러는데, 엄청 맛있대요!”

 

그렇게 처음 맛본 솜사탕. 자꾸 입술에서 녹고 손가락까지 끈적이게 만들어 별로 맛이 없었다. 여섯 살, 인생 처음 당한 사기였다. 하지만, 다음날 나는 학원에서 TV 광고에 나오는 솜사탕을 처음 먹어본 아이로 다른 아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절로 어깨가 으쓱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