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까는 고등학교를 재수하여 들어갔다. 그는 실업계 고등학교인 농고를 지망했는데,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농법을 배우고 싶어서였다. 대농이 꿈이었다. 당시 고등학교 입시는 인문계와 실업계가 달랐다. 인문계는 연합고사 성적, 작문점수, 체력장 점수를 합산하여 신입생을 선발했고 실업계는 내신과 신체검사로 신입생을 뽑았다. 일찌감치 진로를 정하여 입시의 부담이 없던 뻥까는 시력이 실력이다!’, ‘청력은 굿럭이다!’를 모토로 내신에 총력을 기울였다.

 

바야흐로 면접 날이 다가왔다. 농고는 연합고사보다 원서접수와 시험이 일렀다. 우리는 면접을 앞둔 뻥까를 응원했다.

 

잘햐!”

잘 보구와.”

걱정 하덜 말어. 내가 누구냐! 그냥 가는 겨. 합격은 뗘 놓은 당상인데, 기양 가주는 겨.”

 

뻥까는 가슴을 두드리며 호언장담의 허세를 부렸다.

원서만 넣으면 무조건 합격이랴.’ 경쟁률 낮은 비인기 학과를 지원했던 터라, 담임도 그 자신도 결과를 낙관했다. 하지만, 그토록 자신했던 입시에서 뻥까는 낙방 했다. 신체검사에서 그가 색맹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던 것이다.

 

부랴부랴 모의고사 문제집을 사서 열심히 풀었지만, 그동안 갈고닦은 시력은 답을 유추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내 고장 학교 보내기를 기치로 도시로 진학하려는 인재를 동네 고등학교에 주저앉히는 일이 벌어지던 무렵이라, 우리 동네 유일한 인문계 고등학교의 합격선이 상당히 올랐다. 하여 뻥까는 9년 시험 인생 최초로 세 자릿수의 총점을 기록한 쾌거를 이뤄냈음에도 학교를 일 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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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재수, 삼수해서 가는 인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보믄서, 왜 고등학교를 재수해서 갔다고 하믄 꼭 한심한 놈 보듯 쳐다보냐?”

 

친구의 소개로 만난 여자에게 애프터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한 뻥까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몇몇 지인에게 물어봤지만, 딱히 뾰족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직접 들어야겠다. 이대로 가다가는 다음 소개팅도 꽝이다. 막걸리를 대접에 따라 벌컥벌컥 들이켠 뒤, 용기를 내서 아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해허지 말어유. 그짝한테 맘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구, 나한티 뭔 문제가 있는지 알아야 할 거 아뉴.” 답이 돌아왔다. ‘당신과 얽히면 족보가 꼬일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한다.

 

재수해서 들어간 고등학교는 우리 동네 유일의 고등학교였기에 2학년 1/3쯤은 초등학교 · 중학교 동창이었고, 나머지는 건너 건너 알았다. 그렇게 뻥까는 동급생뿐만 아니라 한 학년 위의 학생들과도 친구로 지냈다. 사촌 오빠가 뻥까와 고등학교 동창이고 친오빠가 초등학교 동창이라 뻥까와 사귄다면 그 둘의 족보가 꼬인다는 게 이유였다.

 

이래서 촌년은 안돼. 고등학교 재수해서 간 게 그렇게 잘못이냐? 잘못이여?”

 

이후 뻥까는 컨셉을 바꿨다. 야성미를 어필하기 위해 지금껏 고수했던 스타일을 버렸다. 머리를 길렀고, 수염을 말끔하게 밀었다. 뿔테 안경을 쓰고 장날 잔뜩 산 와이셔츠 차림으로 읍내를 돌아다녔다. 사람들이 자기를 지식인으로 보아주길 원했다.

 

어뗘? 나 선상님 같지?”

 

편의점에서 산 얼음을 아작아작 씹으며 뻥까는 자신이 스타일에 변화를 준 이유를 한참 떠들었다. 대처 아가씨랑 선보기 하루 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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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여?”

집이여. 선은 잘 봤어?”

그럼! 아주 나한테 반해서 눈이 째지드라, 째져. 집에서 뭐 혀?”

그냥 집 보구 있어.”

뚝방으로 나와. 맥주나 한잔허자.”

 

슬리퍼 끌고 슬렁슬렁 걸어 뚝방 아래 벤치로 갔다. 뻥까가 벌써 도착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어여 와.” 양복 차림의 그가 비닐봉지에서 맥주를 하나 꺼내 건넸다.

 

너 이거 먹지?”

바로 온겨?”

.”

 

치익. 거품이 올라왔다. 러닝을 끄집어내 뚜껑을 닦아 내고 한 모금 마셨다.

 

얘기 좀 해봐. 으뜨케 됐어?”

…, 느낌이 좋어.”

 

뻥까는 이타적이고 개념 충만한 인텔리로 보이고 싶었다. 역병이 창궐한 시대. 사회적 거리두기에 힘을 쓰는, 주위를 배려하는 세심한 남자이고 싶었다. 약속 장소를 현대미술관 앞으로 잡았다. “그래두 딴 데 보다 거기가 좀 있어 보이잖어.” 약속 시각은 1230. 점심 먹기 좋은 시간이다. 뻥까는 아가씨를 편의점 앞 파라솔로 데려갔다. “지달려 봐유.” 미리 보아둔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짜장면 두 그릇을 편의점 앞으로 배달시켰다.

 

어디 식당에 들어갔다가 애꿎게 탈 나믄 안 되잖어.”

아가씨가 먹디?”

많이는 안 먹구 쪼끔 먹드라. 왜 여자들은 하나같이 먹는 거 가지구 내숭을 떤댜.”

 

편의점에서 사 온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후식이었다.

 

너도 봤어야 허는데…. 아가씨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 이야기를 듣고 막 웃고 그랬어. 이만허믄 괜찮었지?”

그러구, 그냥 헤어진겨?”

뭘 또 해야 하는 거냐? 약속 있다구 가던데?”

 

하아! 친구야. 어째 이번 소개팅도 망한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