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어트의 '황무지'가 절로 떠올랐던 4월 지나,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꽃피고 녹음이 찾아오고 단풍이 떨어지는 계절을 보냈다. 그렇게 몇번의 폭풍이 휘몰아친 후, 간간이 연락하며 시간이라는 특효성분이 포함된 후시딘과 마데카솔을 상처난 마음에 조금씩 발랐다.

 

늦은, 아니 이른 퇴근이었다. 아침 7시 집에 들어가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도 출근하는 친구는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였다.

 

"뭐하냐?"

"자고 있었지."

"내일 쉬지?"

"."

"내일 얼굴이나 보자."

"그래."

 

 

--- ** --- ** ---

 

 

만난 건 그로부터 며칠 뒤, 주중의 어느날.

망원역으로 오라해서 합정역에서 갈아타고 내렸는데, 녀석이 말한 출구가 안 보였다.

 

", 10번 출구가 없다?"

"너 어딘데?"

"나 지금 망원역."

"야이 개시키야! 합정역이라고!!"

 

일이 늦게 끝났다. 미리 연락을 했지만, 한 시간을 기다린 친구는 화가 많이 나있었다. 하여, 지하철 역 출입구에서 기다리다 다른 곳에 자리 잡고 안주를 시키고 빈속에 술을 들이켠 녀석은 술도 오르고 화도 오르고 목소리도 오르고…….

 

"늦어서 미안하다."

"됐어. 마셔. 내가 너 기다리다 반병이나 마셔부렀다."

 

친구는 반쯤 남은 소주병을 들어 내 잔에 따랐다.

 

". J도 불렀다."

"? 시간이 된대?"

 

J의 회사는 같은 서울이지만 이곳과 거의 극과 극이다. 거기다 퇴근도 꽤 늦고.

 

"외근 나왔다는데?"

"만나면 좋지."

 

이야기를 하는 동안 J가 왔다.

우리는 전어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어는 가을 전어가 최고지!"

"그럼!!"

 

빈속에 쏘맥을 한 친구들은 술이 얼근히 올랐고, 전어 구이가 나오기도 전에 술잔을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