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을 배우고 있다. 월, 수, 금은 강습이 있고 나머지 요일은 배운 것을 복습하는 패턴이다. 시간은 오전 6시부터 50분간. 요즘 체력이 너무 떨어져 ‘뭐라도 해봐야겠다.’ 싶어서 시작한 운동이다. 이제 보름 정도 지났는데, 아직 체력이 좋아진 건 모르겠고 엉뚱하고 기이하고 반가운 사람 몇을 만나 새삼 세상이 넓고도 좁다는 걸 느꼈다.
운동을 마치고 주차장까지 걸어가는데, 옆에서 걷던 남자가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더니 “혹시 김.찬.샘?”하고 말을 붙였다. “어? 호승아!” 초등학교 동창이다.
“이 동네 살어?”
“아녀. 직장이 이 근처라서 여기 등록했어. 너는?”
“나는 이 동네 살어. 기름쟁이여. 허구헌 날 기계만 디다봐. 너 혹시 판사나 삼성 임원이나 뭐 그런 거 하는 거 아녀?”
수다가 끊이지 않았다. 초등학교 졸업한 지 삼십 년이 넘었다. 그 세월의 간극이 무색하게도 친구는 나를 바로 알아봤고, 나도 눈이 마주친 순간 그가 누군지 딱 떠올랐다. 기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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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퇴근하며 수영장에 들렀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침 수영을 빼먹었다. 어제 마신 맥주가 화근이었다. 밤에는 천년만년 살 것 같더니, 아침이 되니까 딱 죽고 싶다. ‘이제 술은 입에도 대지 않으리라.’ 여느 술꾼의 다짐을 되뇌며 탈의실에 들어섰는데, 사람들이 가득했다. 간단하게 샤워하고 수영장에 들어선 순간, 나는 여기가 휴가철 해변인 줄 알았다. 풀장이 사람들로 득시글거렸다.
초보 레인에서 킥판 잡고 소심하게 발차기하며 나가는데, 누군가가 나를 툭 치고 지나갔다. “찹! 찹! 찹!’ 찰진 물소리가 부러웠다. 나는 아직 “첨벙! 첨벙! 첨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두어 바퀴 돌고 물에서 나왔다. 나로 인해 적체되는 게 미안했다. ‘내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으리!’ 아침 수영을 위해선 그 수밖에 없다!
샤워하고 머리를 말리는데, 거울 너머 누가 내 뒤에서 기웃대며, “어? 어? 어?” 어버버거렸다.
“쫑!”
학원강사 시절, 내게 수업을 들었던 친구다. 별명은 ‘쫑’. 이름이 ‘종우’라 그렇다고 했다.
“어? 어!”
“너 아직도 웅변학원 등록 안 했어? 내가 말했지! 거기 한 달만 다니면 어버버 다 고친다고.”
“어…, 어? 어!”
입술이 맷돌처럼 돌았다.
“쌤! 어떻게 저 한 번에 알아봤어요?”
너를 어떻게 못 알아보겠니. 네 목소리, 말투 자체가 지문과도 같은데.
반가운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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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의 일이다. 일찍 수영장에 오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아, 이제 눈이 마주치면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를 하고 다닌다.
킥판을 잡고 발차기 숨쉬기 연습을 하며 레인을 두 번쯤 왕복했을 무렵, “저…, 저기요.”, “네?”, “아…, 아니에요.” 20대 초반의 아가씨가 내게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았다.
요즘 엉뚱한 장소에서 반가운 인연을 만났던 일이 일어났던 터라, 혹 아는 사람인가 싶어 수경을 올리고 물끄러미 바라봤는데, 아니었다. 그저 여기서 오며 가며 보았던 사람이다.
오늘은 영 호흡이 안 됐다. 발차기도 안 되고. “다리가 자꾸 가라앉아요.” 같은 반에서 강습받는 어르신이 내 문제를 짚어줬다.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안 된다. 내 몸 하나 물속에서 가누지도 못하는데, 다른 일이 어찌 쉬울까. 그래, 세상에 쉬운 일 하나도 없다.
샤워하러 들어가서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본 순간, ‘아! 이거였구나!’ 감이 왔다.
수경 코 받침이 아치형 (∩)인데, 내가 그걸 합집합(∪) 모양으로 쓰고 있었다. 아까 말을 걸다 만 아가씨는 아마도 그걸 짚어주려 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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