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그놈의 시간은 언제 나는 겨? 명 짧은 놈은 술 냄새보다 향냄새부터 맡게 생겼네.”
마주칠 때마다 술 마시자고 조르는 이 사람은 우리 회사 구내식당 조리 실장님. 실력은 최고인데, 성격이 까칠해서 식당 직원들과의 불화로 한동안 멀리 유배되었다가 복귀하셨다. 별명은 도라이 혹은 ET. 직원들과 인사를 주고받지 않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나와는 동향이라는 이유로 그나마 말을 섞는 편인데, 얼마 전부터 계속 술 먹자고 조른다.
“오늘 어뗘? 응?”
그는 손목을 돌리며 한잔 꺾는 흉내를 냈다.
“피곤해서 일찍 들어가서 쉬어야 할 거 같아요.”
“에이~ 구찮게 안 혀. 딱! 한 잔! 응?”
“실장님 말술이잖아요.”
“아녀. 나도 인자 늙어서 많이 못 마셔.”
서 말 술을 지고는 못 가도 뱃속에 담아는 가는 양반이 어디서 사기를 치시나.
“세월이 야속하지. 인제는 같이 술 마실 친구도 읎어.”
손가락으로 벽을 꾹꾹 누르며 내뱉는 그의 한숨 섞인 말에, 졌다.
“에효. 소주는 부담스럽고 맥주 어때요?”
“조오치이! 근데 나는 소맥 하믄 안되나?”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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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다 거짓말 같이 그쳤다. 미세한 물방울들이 공간을 꽉 채운 듯, 습도는 한껏 올랐고 기온은 여전히 높았다. 그야말로 찜통더위다. 이런 날은 우적우적 수박을 먹다가 “투! 투!” 입안에서 겉도는 수박씨를 뱉으며 놀아야 하는데, 술이나 먹게 생겼다.
“어디로 가유?”
“아차산 근처에 먹태를 기가 맥히게 구워주는 집이 있댜.”
에어컨 빵빵한 실내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싶었으나, 실장님은 야외 테이블을 고집했다.
“한잔혀.”
빨간 파라솔 테이블 위로 술과 안주가 놓이자, 그가 잔을 들었다. 티셔츠 단추를 모두 풀고, 바지를 무릎까지 걷은 흔한 동네 아저씨 모습에 “풉!” 웃음이 나왔다.
“뭐가 그리 재밌어? 나한테도 좀 알려줘 봐아. 같이 웃게.”
“그냥 동네 사는 형 같아서 그려요. 회사선 카리스마 넘치는 양반이 여기선 아주 그냥 동네 아자씨여.”
“하이고. 말 들어 처먹는 인간이 하나두 없는데, 무슨 카리스마여.”
실장님의 불만이 쏟아졌다. ‘내 새끼에게 못 먹일 음식을 만들면 안 된다.’ 그의 지조이며 요리 철학이다. 맛이야 워낙 정평이 났고 경험해서 알고 있었지만, 위생 관련해서도 거의 결벽증처럼 깔끔떤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내 마음 같을 수는 없다. 나는 잘해보자고 한 말인데 누군가는 불만을 품고, 나름의 배려와 호의를 어떤 사람은 불편하게 받아들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평생을 함께하는 가족과도 오해가 생기는 마당에 타인과의 관계는 어떻겠는가. 그저 내 말이, 마음이 그에게 닿을 때까지 두드리고 두드릴 뿐이다.
이와 같은 내 말에 실장님이 눈을 반짝였다.
“오늘부터 내 종교는 팀장님이여. 내가 매일 술을 바칠게유!”
헉! 큰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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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어디선가 검은 물체가 휙 날아와서 유리창에 부딪히더니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뭐여!”
작은 새다. 참새 새끼인 것 같아, 술집 사장님께 면장갑을 빌려 조심스럽게 손으로 집었다.
“죽은겨?”
“글쎄요. 어?”
몸을 부르르 떨며 날개짓하려고 해서 손가락을 폈다. 근데 얘가 머리를 까딱까딱 돌리며 사방을 둘러보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자리를 잡더니 눈을 감는다.
“뭐여, 자는 겨?”
술기운에 톤이 높아졌던 실장님의 목소리는 어느새 속삭임으로 변했다.
그렇게 한동안 사람의 손에서 잠을 청해 우리 모두를 꼼짝 못 하게 만들었던 작은 새는 짧은 꿈에서 깨어나 휘리릭 날아갔다.
“뱁새를 여서 보네.”
새가 날아간 흔적이 눈에 보이기라도 하는 듯, 그는 허공을 더듬으며 한동안 고개를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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