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하다. 며칠 전에는 서리가 내렸다. 고구마를 수확할 때다.

여름 장마가 꽤 길었다. 수로를 낸다고 냈지만, 내린 비에 텃밭이 여러 번 잠긴 터라 고구마 농사가 잘 안되었을까 어머니의 걱정이 크다. 어제 아부지가 미리 고구마 줄기를 모두 걷어 냈다. 오늘은 비닐을 벗기고 캐기만 하면 된다.

 

고구마 캘 때 주의 사항. 호미질은 천천히 조심스레 할 것. 고구마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종잡기 어렵기에 함부로 호미질하다가는 고구마를 찍기 십상이다. 생채기가 생긴 고구마는 그렇지 않은 고구마에 비해 쉽게 썩는다. 살살 달래듯 캐야 한다.

 

올해 고구마는 땅속 깊이 자리 잡았다. 흙이 마르고 단단해서 호미질이 힘들었다. 내가 삽으로 두둑을 깊숙이 찔러 퍼 올리면 어머니가 호미로 흙을 살살 긁어 캐냈다.

 

연상이 장개든댜.”

 

연상이는 어릴 적 친구다. 한동네서 자라긴 했는데, 그다지 친하게 지내진 않았다. 나는 동네 아이들과 산으로 들로 쏘다녔고 그는 어려서부터 컴퓨터, 게임 등에 탐닉하느라 집 밖으로 잘 안 나왔다. 성격이 순하고 천성이 착해서 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들끓었다. 여럿이 왁자지껄 모여 노는 것보다 서너 명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나와는 여러모로 맞지 않았다.

 

그래요?”

그려. 인자 진짜루 너만 남었어. 대체 우리 아들은 뭐가 부족해서 장개를 못 드는 겨.”

얼굴이죠. 제가 못 생ㄱ….”

 

어머니가 흙을 움켜쥐더니 내 얼굴을 향해 힘차게 뿌렸다.

이야! 우리 엄니, 팔이 빠지네 어쩌네 앓는 소리 하시더니 다 그짓말이었어!

 

니가 뭐가 부족허냐! , , 입 뭐 한 개라도 빠지는 거 있냐? 있어?”

 

우리 집안 사람들의 특징. 위로하는 말에도 거짓을 섞지 않는다. 어머니는 끝까지 우리 아들 잘생겼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너 내 소원이 뭔지 알어?”

알죠.”

뭐여?”

통일이요.”

 

다시 흙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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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수확이 끝났다. 작은 텃밭임에도 흙이 마르고 단단해서 이틀이나 걸렸다. 고구마를 크기별로 선별해서 박스에 담았다. 한 박스는 어제 일을 도와준 동네 아주머니 가져다드리고, 나머지는 보일러실에 가져다 놓았다.

 

샤워를 끝내고 아부지가 사준 캔맥주를 마셨다.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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