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달라도 상관없어. 널 이해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

설을 앞둔 어느 날 새벽, 잠이 오지 않아 한참을 뒤척이다 보게 된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거기서는 원작에 비해 영화가 손색이 있다고 ‘비추’를 했다. 하긴…, 원작보다 나은 한국 영화가 ‘엽기적인 그녀’를 제외하고 무엇이 있던가.

더듬더듬 휴대폰을 찾았다. 그 인상 깊은 말이 나온 영화의 원작이 뭐라고 그랬더라.
「남쪽으로 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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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사회시스템 자체를 부정하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유일하게 이해해주는 어머니, 유부남과 연애하는 누나, 수학적 이해력은 형편없지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동생, 그리고 그런 별난 가족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올해 6학년의 평범한 아이 지로. 책은 이 가족이 겪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지로와 작가의 시선으로 하나씩 풀어나간다.

합법적으로 노동자의 삥을 뜯는 버마재비 같은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대한 지로 아버지의 일갈은 우리네와 상통하는 면이 많다.

“아무튼요, 우에하라 씨도 언젠가는 노인이 되실 겁니다. 개미와 베짱이에 빗대자는 건 아니지만, 변변한 저축도 없이 노후를 맞이한다면 그건 정말 불안한 일이죠. 그러니까요, 노후를 위한 저축이라고 생각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쓸데없는 참견이야. 그런 건 각각 자기 책임으로 두면 돼.”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굶어 죽는 사람을 나라에서 그냥 손 놓고 보고만 있겠습니까? 결국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밖에 없다고요.”
“오만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군. 대체 어느 누가 도와달래?”
“인도주의는 국가의 구심력인 겁니다.”
“시건방진 소리. 미국의 패권주의와 똑같은 발상이로군. 인도주의라는 미명 아래 지배층의 가치관을 온 세계에 이식하려고 하지.”
“이야기를 비약시키지 마시고요.”
“노상에서 죽을 자유를 빼앗겠다는 건가, 국가에서?”

아버지의 입에서 침이 튀었다.

“우에하라 씨는 노상에서 죽고 싶다는 말씀이세요?”
“응, 노상에서 죽고 싶고말고. 신주쿠 중앙공원에서 새벽녘에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음, 아주 멋진 최후야.”
“그럼 시체는 누가 치웁니까? 우에하라 씨가 벌레보다 싫어하는 그 공무원들이 치워야겠죠? 한 사람의 막무가내식 행동 때문에 온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다고요.”
“그게 바로 쓸데없는 참견이라는 거야. 시체야 까마귀가 쪼아 먹게 놔두면 돼.”

- 오쿠다 히데오, 「남쪽으로 튀어, 1권」, 양윤옥 역, 은행나무, 2006, pp.21~22

하지만 중학생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아들에게 하는 조언이라든지, 학교에 대한 자기 생각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장면은 ‘이 양반이 아버지 맞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현실감이 결여된 듯한 말과 행동을 보여주던 지로의 아버지는 후반에 가서야 비로소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말을 던진다.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워. 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해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

- 2권, pp.288~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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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며 거슬렸던 부분은 호칭에 관한 문제. 번역가가 호칭을 잘못 썼다고 해도 이건 편집과정에서 바로잡을 수 있었던 문제 아닐까?

“그래. 언젠가 엄마가 말했던 그 섬. 그래서 누나하고 오빠에게도 이별 인사를 할 거라고 불러오랬어.”
→ 지로의 여동생인 나나에의 말이다. 나나에 입장에선 누나가 아니라 언니다.

지로도 집안일에 본격적으로 힘을 보탰다. 형제 셋이서 보내는 섬 생활이었다.
→ 아들 하나, 딸 둘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은 남매지 형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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