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처먹고 사고 치는 잉간 쌨어도 대마초 빨고 사고 치는 년 봤냐? 새꺄. 니가 봤냐? 봤어? 술 처먹고 포장마차 앞에 세워진 일제 오토바이 한 대 냅다 걷어찬 죄로 방범한테 잡혀서 학동2동 파출소에 끌려갔을 때 대마초보다는 술을 더 처먹은 것 같은 아가씨 하나가 의경 귀싸대기를 후려치며 외쳤다 씨발놈아, 대마초가 영어로 뭔지나 알어? 내 이름이 마리다, 마리! 졸라 무식한 것들이 대마초를 잡고 지랄이야!
술 처먹고 사고 친 나는 마누라까지 불러 합의 보는데 나보다 더 술 처먹은 것처럼 보이는 아가씨는 의경 무전기까지 뺏어 들고는 밍구 씨, 밍구 씨, 내가 밍구 씨 때문에 얼마나 외로운지 알어? 나 너무 외로워서 한 대 빨았어. 와 줄 거지? 올 거지? 에로 영화 배우처럼 흐느끼기 시작했다
오토바이 발로 찬 합의금이 두 달 치 월급에 이르는 사이 밍구 씨보다 먼저 강남경찰서 봉고차가 도착했고 대마초가 니들한테 잘못한 게 뭐가 있어? 니들이 내 외로움을 알어? 이 씨발놈들아! 민주 투사 같은 자세로 아가씨 간신히 실려 가고 나자 미친년, 외롭다고 대마초 피워서 좋아질 거 같으면 난 대마초 아랫도리랑 간통이라도 하겠다. 합의서에 서명 마친 마누라가 담배 하나 빼어 물며 말했고 술 처먹고 사고 친 나도 그제서야 조금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고 대마초를 한 대 빨면 정말로 조금 덜 외로워져서 술 안 처먹고도 늠름히 버틸 수 있는 세상이 올까 싶어 순경에게 다가가 진심으로 물었다 아저씨, 대마초는 합의금이 얼마쯤 해요? 순찰 나온 달이 흐흥흐흥 웃는 밤이었다
- 류근, 「상처적 체질」, 문학과지성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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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열심히 두드린 글을 파란 화면이 잡아먹었다. 망연자실 모니터를 바라보다 책꽂이에서 시집 한 권을 빼서 주르륵 넘겼다. 재기 발랄한 시가 눈에 들어온다. 맥주나 하나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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