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기가 느껴지면 아직 욱신대고 화끈거리지만, 이제 손가락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이 정도면 다 나은 거다. 여행의 시간이 도래했다. 제주로 떠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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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고 지고, 달이 차고 이울고, 바람을 타고 하늘하늘 춤추는 눈송이 같은 고추꽃이 피고 질수록 어머니의 체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동생과 나는 어머니와 제주도 여행을 하기로 했다. 더 늦기 전에 온전히 어머니에게 초점을 맞춘, 어머니만을 위한 여행을 계획했다. 동생은 ‘아내 바라기’ 남편과 ‘엄마 껌딱지’ 아이들을 설득했고, 나는 아버지께 용돈을 드리고 ‘친구분들과 온천에 다녀오시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벌컥 화를 내려던 아버지가 봉투를 슬쩍 열어 보시고는……,
흔쾌히 허락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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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날짜가 다가올수록 어머니의 컨디션이 점점 떨어졌다. 식사를 잘 못하시고 잠깐 걷는 것도 힘에 부쳤다. 대상포진이었다. 병원에서는 절대 무리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고, 우리는 여행을 취소하기로 했다.
“야! 느 애비가 뭐래는 줄 알어?”
“아부지가요? 뭐라셨는데요?”
“’제주도 갈 겨?’, ‘이래서 가것어?’, ‘갈 겨?’ 이럼서 막 사람 염장을 질러. 그래, ‘가! 간다고! 내 헤엄쳐서라도 제주도 가고 만다!’이랬어.”
며칠 전만 해도 체력에 자신이 없어 여행에 회의적이었던 어머니의 마음이 바뀌었다.
알아보니 제주도는 관광지마다 휠체어 대여를 해주는 곳이 있어 어머니의 체력소모를 최소로 하는 루트를 짤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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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을 입었다. 순간의 방심이 화를 일으켜 화기가 손가락을 덮쳤다. 병원 가는 내내 머리를 채운 건 ‘제주도에서 운전 어떻게 하지?’였다. 손가락이 말을 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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