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무렵, 쪼그려 앉아 서류 상자를 꺼내다, 휘청! 중심을 잃고 앞으로 넘어져 바닥에 무릎을 찧었다. 아프긴 했지만 못 참을 정도의 고통은 아니었고, 걸을 때마다 통증이 있긴 했지만 못 걸을 정도는 아니었다.
내일은 쉬는 날. 주말도 없이 달려온 나날이었다. 맥주 한 캔 마시고, 양치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모레, 아부지 치과 예약이 잡혀 있다. 그동안 동생이 아부지 모시고 다니느라 고생했는데, 이번엔 내가 시간이 된다. ‘이제 족발 드셔도 되려나?’ 며칠 전에 아부지가 드시고 싶다고 하셨는데, 괜찮은지 물어봐야겠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잠에서 깼다. 왼쪽 무릎이 이상했다. 일어나서 걸으려는 순간, 통증이 번개처럼 몸을 강타했다. 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쉬다 바지를 걷었다. 라면 먹고 잔 다음 날 내 얼굴처럼 왼쪽 무릎이 오른쪽 두 배쯤 되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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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개골이 깨졌네요.”
의사샘은 모니터를 내 앞으로 돌려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며 마우스 포인터로 까맣게 줄이 간 부분을 짚었다.
“우선 CT부터 찍으시죠. 수술은 안 해도 될 거 같긴 한데…, 여기 보이시죠? 여기가 애매해요. 벌어진 거 같은데, 정확한 건 CT를 봐야 알 수 있어요.”
소염진통제를 처방받고, 물리치료하고 나오겠거니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들어섰는데, 뜬금없는 수술 얘기에 오만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CT를 찍고 진료실 앞에서 내 이름이 불리길 기다리며, 제발 ‘수술하자.’라는 말만 나오지 않기를 빌었다.
“찬샘씨.”
“네.”
“진료실 들어가세요.”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괜찮네요. 수술 안 해도 되겠어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깁스하셔야죠. 통깁스하셔야 하는데, 아직 부기가 안 빠져서 오늘은 반깁스하시고, 일주일 뒤에 다시 오세요.”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조금 전까지 ‘수술’이야기가 나오지 않기를 빌었건만,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자, 이번 달, 다음 달 스케줄이 줄줄이 떠올랐다. 이사분기 마무리 달이자, 하반기 시작을 준비하는 6월. 쌓인 일이 많다.
“저…, 선생님. 제가 깁스하고 누워있을 상황이 안 돼서…, 깁스 말고 보조기 착용하고 생활하면 안 될까요?”
“그럼, 깁스에 비해 뼈가 붙는 속도가 느립니다. 저를 오래 봐야 할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다음 주에 한 번 더 와서 사진 찍고, 향후 치료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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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기를 착용하고 절뚝절뚝 걸어 회사에 들어서자, 보는 사람마다 놀라서 ‘많이 다친 거냐? 왜 그런 거냐? 괜찮냐?’고 물었다.
“무릎을 찧었는데, 슬개골이 깨졌대요. 괜찮아요.”
누가 보고를 했는지, 여덟 시도 안 되었는데 두목님이 나를 찾았다.
“어쩌다 그런겨?”
“여기서 서류 빼다가 바닥에 무릎을 찧었지 뭐예요.”
“병원에서 뭐랴?”
“깁스하라죠, 뭐. 근데 어떻게 그래요. 할 일이 태산인데.”
“산재 처리할 테니까, 당장 입원혀.
“입원은 무슨…. 좀 쉬면 낫겠죠. 연차 써서 이번 주만 쉬려고요.”
“됐고, 일단 여기서 사라져! 이야기는 차차 하고.”
그 후 거의 한 달을 쉬었다.
체중이 5kg 증가했다. 오늘부터 다욧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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