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다. 아부지는 같이 일하는 분의 ‘자기 밭을 부쳐보지 않겠냐.’라는 제의에 ‘좋다.’고 대답했다. 100평 조금 넘는다고 하니,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작물을 심고, 퇴근 후 관리를 하면 혼자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애석하게도 일흔을 넘어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다른 본인의 체력을 과신하셨고, 이미 농작물을 심은 두 필지의 밭을 너무 쉽게 생각하셨다.
나는 부모님이 텃밭을 일구며 농사에 매달리는 것이 늘 걱정이었다. 농사일이란 것이 때를 놓치지 않고 해야 하고, 그런 일들이 끝없이 생겨나는지라 아프다고, 피곤하다고, 병원에 가야 한다고, 쉬거나 빼먹을 수 없다. 그렇게 애쓰고 노력해도 냉해, 수해, 한해 등등…,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재해가 닥치면 그 모든 수고가 며칠 사이 수포가 되고 만다.
작년에 분명히 다짐받았다. 고구마 수확을 끝내고 몸살이 난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며 “이제 농사는 우리 먹을 만큼만 해요.”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하라고 혀도 못 혀.‘라고 하셨고, 며칠째 통 식사를 못하고 누워만 계시는 어머니가 안쓰러웠던 아부지도 ‘인자 농사는 끝이여.‘라고 대답하셨다.
하지만, 아부지는 올해 더 크게 판을 벌이셨다! 어머니가 당신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내가 혼자 해도 충분혀.‘ 큰소리 탕탕쳤던 아버지는 언제나 그렇듯, 수습하지 못하고 어머니 뒤로 숨었다. 지학(志學)의 나이, 염소에게 우롱당해 ‘농사는 짓지 않겠다!’ 뜻을 세웠던 나는, 그 질풍노도 시기의 다짐을 아직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으나, 차마 연로하신 부모님의 고생을 지켜보지 못하고 뜻을 꺾어야 했다. 휴일마다 밭에 가서 일을 했다는 말이다.
집 근처 텃밭에는 고추, 가지, 오이, 상추, 방울토마토, 대파…, 당장 수확해서 밥상에 오를 만한 작물을 심었고, 다른 밭에는 고구마와 감자를 심었고, 또 다른 밭에는 들깨를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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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수확일이 가까워질 무렵 비가 내렸다. 어머니는 초조했다. 어깨 회전근 파열로 수술 날을 잡아 놓은 터였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감자 농사를 마무리 짓고 싶어 하셨다. 내가 시간을 내서 사부작사부작 수확을 할 테니 마음 놓으시라 해도 어머니의 걱정은 끝이 없었다.
토요일 내내 내리던 비가 저녁이 되자 그쳤다. “내일 감자 캐러 가자.” 감자 캐는 건, OK. 하지만 어머니가 같이 가는 건 반대였다. 요즘 팔의 고통을 진통제로 겨우 달래며 선잠을 자는데, 감자를 캔다면 그 고통은 심화하여 불면의 밤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이래나 저래나 아픈건 매한가지여.” 어머니는 같이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나는 그 고집을 꺾지 못했다.
감자 수확일은 일요일, 어머니의 왼쪽 회전근개 봉합수술 이틀 전, 입원 하루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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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수술 다음 날, 병원에서 간병하고 있는데 아부지한테서 전화가 왔다.
“집에 무씨 어디 있는지 아니?”
농작할 밭을 또 얻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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