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이었다. “안녕하세요.” 문을 열고 나오는 H를 향해 손을 쓰윽 들어 인사를 하는데, 그는 나를 흘끔 보고 성큼성큼 타 부서로 걸음을 옮겼다. “사과하시죠!”, “뭐, 이 자식이?!” 고성이 터졌다. 아침 일곱 시 삼십 분. 머리가 지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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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자칭 우리 팀 에이스. 회사를 박차고 나갔다가 컴백한 인물로 우리 팀으로 온 지 곧 있으면 2년이 된다. 멘탈이 약하고 감정의 기복이 업무와 직결되는 단점이 있지만, 조금만 사기를 북돋우면 혼자서 두 명 몫의 일을 해내는 역량을 발휘한다. 팀원 두 명이 그를 누나처럼 때로는 이모처럼 챙겨주며 멘탈을 관리하는데, 가끔 오늘처럼 돌발상황이 생긴다.
 
“팀장님. 제가요…….”
 
이럴 때 H의 말은 두서가 없고, 맥락이 없어서 상황 파악을 하려면, 인내심을 갖고 오래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 H와 얼마 전에 경력직으로 입사한 타 부서 과장과 마찰이 생겼다. 곰곰이 들어보니 H는 신입 과장이 ‘꼰대 짓한다.’고 여기고, 타 부서 과장은 ‘H가 텃세 부린다.’고 생각해서 마찰이 일어난 것 같았다.
 
“어떻게 좀 해봐요. 애가 썩은 동태 눈이잖아요.”
“맞아요. 팀장님. 놔두면 쟤 또 또라이 짓 해요.”
 
팀원들이 나를 닦달했다. 맞다. 멘탈이 터지면 H는 한 번씩 사고를 쳤다. 수습하며 여기저기서 욕먹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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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 잠깐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파티션을 두드리며 말을 걸어야 사람이 있다는 걸 인지할 정도로 그는 매우 바빠 보였다.
 
“네?”
“바쁘신 것 같네요. 있다가 올게요. 시간 될 때 연락주세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이쪽으로 오세요.”
 
탕비실 앞 2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아침에 H 씨와 큰 소리가 나는 걸 들었거든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려고 왔어요.”
“그게 말입니다…….”
 
30분? 그 정도의 시간이었다. 그는 갈등의 시초에서 분쟁으로 이르기까지 이야기를 쏟아냈다. 둘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니, H가 텃세를 부린 것은 맞았다. 하지만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렇군요. 그 일에 대해서는 제가 H 씨에게 따끔하게 이야기해서 과장님께 사과게끔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야기 듣다가 걸리는 부분이 있는데요, 과장님이 욕했다고 자신에게 사과하라고 했다는데, 그건 무슨 이야기인가요?”
“아, 그거요? 왜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감정이 격해지면 말이 세게 나가잖아요. ‘이, 씨!’ 그랬는데, 그걸 욕이라고 하더라고요.”
“’이, 씨’ 그 말을 욕으로 받아들였다고요?”
“…….”
“끝에 숫자가 붙었군요.”
“……. 아니, 팀장님. 서로 언성이 높아지다 보면 당연히 나올 수 있는 말이지, 그게 욕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죠. 다음에는 그 끝에 ‘새끼’가 붙어도 아무렇지도 않겠고요.”
“왜 말씀을 그렇게….”
“과장님. 저는 과장님이 어떤 사람인지 아직 모릅니다. 과장님의 그 말이 단순히 격한 감정을 토로한 건지, 상대를 향해 욕을 한 건지 판단이 안 섭니다만, 그 자리에 있던 당사자가 모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서로 부대끼며 쌓아온 세월이 있다면, 상대의 어법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함께한 시간이 물리적으로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이해를 기대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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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의 멘탈을 관리하는 직원이 그를 어르고 달래, 사과하러 보냈다. 그는 코뚜레를 붙잡힌 소처럼 미적미적, 어기적어기적 끌려가듯 떠났다가, 며칠만에 시원하게 일을 치른 변비 환자처럼 상쾌한 얼굴로 돌아왔다.
 
“제가 사과하니까, 과장님이 자기도 오해한 부분이 있었다고, 욕해서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퇴근 무렵, 두목님의 호출로 집에도 못 가고 감자탕집에 앉아 소주를 시켰다.
 
“H한테 따끔하게 이야기한다고 했다며? 어떻게 했길래, 그 쿠크다스가 사과하고 악수하고 포옹도 하고 그래?”
“따끔하게? 얘가 과연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가서 사과해 주면 안 돼?’ 뭐 이랬겠죠.”
 
두목님 오른팔이자, 나를 이 구렁텅이로 잡아끈 부두목이 밉살스럽게 말을 받았다.
내가 그렇다고? 에효. 주먹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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