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유전일 겁니다. 어머니는 마흔이 되기 전에 틀니를 하셨고, 일흔이 넘은 아버지는 치아가 몇 개 남지 않아 이제 틀니를 고려해야 합니다. 아말감으로 어금니를 때웠는데, 시간이 갈수록 유지 기간이 짧아지더군요. 어느 날부터 음식물을 씹으면 오른쪽 위 어금니에 찌릿한 통증이 왔습니다. 처음엔 강도가 있는 음식물을 씹을 때 그랬는데, 나중에는 부드러운 음식물을 씹을 때조차 그랬습니다. 고향에 내려갔다가, 시간이 난 김에 치과에 가보라는 어머니 말씀에 가벼운 마음으로 치과를 찾았습니다. 통증이 있는 부위의 아말감만 교체하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엑스레이를 찍고 아무런 설명 없이 신경치료 준비를 하기 시작합니다.
“선생님. 신경치료를 해야 하나요?”
“네. 씹을 때 불편하시면 신경치료 해야지요.”
“저는 아말감을 걷어내고 다시 때우면 되는 줄 알았거든요.”
“때운 부위가 넓어서 그렇게 치료하면 금세 떨어져요. 씌워야 해요.”
“신경치료가 오늘 하루에 끝나지 않지요?”
“그렇죠. 무슨 사정이 있나요?”
“제가 집이 서울이라 아무래도 왔다 갔다 하기 쉽지 않아서요.”
“아… 그러면 집 근처 치과에서 치료하시는 편이 좋겠네요.”
그렇게 치과를 나와 몇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치과를 가야 한다는 생각하기는 했는데, 시간이 안 났어요. 음… 생각해보니 그건 핑계군요. 무서웠습니다. 치료 시의 통증이 무서운 게 아니라 걷잡을 수 없이 치솟는 치료비가 무서웠어요. 다른 치아도 툭툭 건드려 보고는 씌워야 할 것 같다고 그랬거든요.
얼마 전부터 잇몸에서 피가 나고 구취가 생겼습니다. 때때로 찬 음료를 마실 때 이가 시리기도 했지요. 더 방치하면 안 되겠다 싶어 집 근처 치과를 찾았습니다.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화면상으로도 충치가 보입니다.
“음… 발치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네? 발치요?”
“신경치료를 해달라고하면 하기는 하겠는데, 충치가 깊어서 실패할 확률이 높아요. 그래도 해달라고하면 먼저 해보고요.”
발치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환자분께 설명해 주세요.”
의사가 잠시 자리를 떠나고 치위생사가 임플란트 과정과 가격을 설명해줍니다. 더불어 아말감으로 때운 치아 곳곳에 금이 가서 인레이로 바꿔야 한다는군요.
“아무래도 발치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잖아요. 생각해보고 이따 전화 드릴게요.”
하아.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때 치료했으면 크라운으로 끝날 것을 방치해서 발치까지 해야 하는구나.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게 생겼네요. 어떡해야 하나. 오후 내내 고민하다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지인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치과를 추천해 달라고 했습니다. 몇 군데 더 방문하고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십여 일을 기다려 예약한 날이 되었습니다.
예약 시간보다 십 분 일찍 도착했는데, 치과가 한적합니다. 의자에 한 명이 누워 치료받고 있을 뿐입니다. ‘어? 사람이 없는데 예약이 왜 이리 오래 걸렸지?’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엑스레이를 찍고 사진을 보며 설명을 들었습니다.
“여기에 충치가 생겼네요. 보이시죠? 열어 봐야 알겠지만, 사진상에 나타난 것보다 충치가 깊을 수 있어요. 치료를 하고 나면 남은 부분이 많지 않아서 크라운으로 씌워야 해요.”
“크라운 치료면 신경치료를 먼저 해야 하는 건가요?”
“아니요. 신경치료는 가장 마지막 과정이에요. 저는 살릴 수 있으면 살려서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상한 의사입니다.
자기 말이 100% 옳은 게 아니니 다른 치과를 더 방문하고 정보를 더 찾아보고 결정을 하라고 합니다.
“다른 치아 상태는 어떤가요?”
“아말감이 들뜬 곳은 없는데 크랙이 간 곳이 몇 개 있어요. 이런 치아는 치료를 해주어야 해요.”
현재 내 치아 상태, 자신의 치료 계획 그리고 다른 치료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다른 치과를 방문해서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결정을 하라고 하네요. 몇 군데를 더 전전하느니 여기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