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등줄기를 내리쬐던 햇볕이 조금쯤 힘을 잃고, 텃밭의 바알갛던 고추가 빨갛게 물이 들면 추석이 성큼 눈앞으로 다가왔을 때입니다. 그리고 금초를 해야 할 때 지요 1.
우리집의 금초는 두 번입니다. 한 번은 친가 쪽이고 한 번은 외가 쪽이지요.
상처(喪妻)한 오빠가 아들과 둘이 온종일 고생하는 게 안쓰러워 어머니가 일을 돕기 시작했는데, 그 일이 조금 커져 아버지와 제가 금초를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친가 쪽은 외가보다 규모가 큽니다. 증조할아버지가 선산을 조성하고 여기저기 흩어진 산소를 모은 이래로 금초는 집안의 가장 큰 행사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그날이 싫었는데, 서울서, 청주서, 충주서 왔다는 얼굴도 촌수도 낯선 어른들이 선산에 모여 누구는 풀을 깎고 누구는 술을 마시고 누구는 큰 소리를 내고… 이런 왁자지껄한 모임의 뒷수발을 단지 고향에 산다는 이유로 어머니가 모두 감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올해 선산 금초는 각자 하기로 해서 생각보다 수월하게 끝났습니다. 매년 누구는 왔네 안 왔네, 일을 잘 하네 마네… 종당에는 케케묵은 옛날이야기까지 튀어나와 큰소리가 나왔는데, 올해는 그럴 일이 없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집안의 장손인 사촌 형을 중심으로 뭉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전에 금초를 끝내고 산소를 돌며 절을 하고 그늘에 돗자리를 깔았습니다. 음복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매번 하나의 화두가 던져지는데, 올해는 삼수하는 조카의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습니다. ‘돌아갈 곳은 남겨 두라.’는 어른들의 만류에 ‘그러면 나태해진다.’며 다니던 학교에 과감하게 자퇴서를 던진 조카는 올해도 수능 준비로 내려오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일 년에 얼굴을 몇 번이나 본다고 집안의 큰 행사에 빠지냐며 작은 큰아버지는 그게 영 못마땅합니다.
“그만하면 됐지 왜 또 학교를 때려 쳤대냐?”
“어려서부터 꿈이 서울대였잖아요.”
“올해는 될 거 같댜?”
“글쎄요. 열심히 하니 되지 않겠어요?”
“야. 그거 하나 소용없다. 찬샘이 봐라. 거기 나와서 뭐 하냐. 이때꺼정 장개도 못 들고 있잖어.”
불똥이 엄한 제게 튀었습니다.
“작은 큰아버지! 그건 제가 못생겼기…”
“형님!”
사자후 같은 아버지의 목소리에 산새까지 놀라 후드득 날았습니다.
“우리 애 만나는 애 있슈. 궁민핵교 선생이유.”
순간 화두가 바뀌었습니다.
“어뜨케 만난겨?”
“이뻐?”
“몇 살이여?”
“니가 좋대냐?”
쏟아지는 시선과 질문에 아버지는 마치 제 대변인처럼 대답하셨지요.
“올해 결혼할 거 같어.”
아! 아부지!!!
‘우째 그리 사냐’ 안쓰러워하시기에,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은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아부지는 냄비에 김치와 고기를 넣어 팍팍 끓이십니다.
저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 금초 : 벌초의 충청도 방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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