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은 마이크의 초··고 동창이다. 둘은 어려서부터 한동네서 자라서 친분이 꽤 깊다. 다만 나를 비롯한 마이크의 대학 친구들과는 관계가 껄끄러운데, 상대보다 자기가 우월하다는 점을 끊임없이 확인받고 싶어 하는 M의 캐릭터 탓이다.

 

그 동네 수도랑 전기는 들어와? 막 시냇물 길어다 밥 짓고 빨래하고 그런 거 아니지?”

 

처음 만났을 때, 충청도 시골 출신인 내게 그가 건넨 말이다. 농담인 줄 알고 웃어넘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강남 8학군이라고 들어봤어? 내가 나온 고등학교가 거기야. 촌 동네랑은 노는 물부터 다르지. 부모님들 소셜 레벨도 차이가 확 나고.”

 

이 새끼 뭐지?

대학생, 그 시절 젊음이 가진 특권 중의 하나는 바로 보기 싫은 놈은 안 보면 그만.’이라는 점이다. 미워하고 싫어하는 데도 에너지가 필요한 법이어서 별 의미도 없는 사람을 굳이 만나서 스트레스받고 에너지를 소모할 이유가 없다. 나와 만나는 자리에 M을 데려오지 못 하게 했고, M이 있는 자리에는 가지 않았다.

 

얼마 안 있어 M의 기행(奇行)이 친구들 사이에 파다하게 알려졌다. 체구가 작고 호리호리한 친구에게 덩치가 그렇게 작아서 여자 만날 수 있겠냐. 적어도 나 정도는 돼야지.’라고 으스댔고, 농군의 자식인 친구에게는 너희 부모님, 어디 농사지어서 밥술이나 빌어먹겠냐. 우리 아버지는 회사 사장이라고 자랑했다고 한다. 여자사람 친구에게 우리 학교 축제는 너희 학교와는 차원이 다르다. 깜짝 놀라게 해줄 테니 놀러 오라.’며 데이트 신청했다가 칠뜨기 같은 새끼가 어딜 들이대냐.’고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걔가 고등학교 때 나보다 공부 잘했어. 수능을 망쳐서 점수에 맞춰서 원서를 쓰는 바람에 대학 콤플렉스가 조금 있거든. 니들이 이해해줘.”

 

마이크는 본심은 착한 녀석.’이라고 M을 열심히 비호했다. 자신이 초래한 상처를 타인을 공격하는 것으로 치유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우리보다 그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마이크의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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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 그 새끼 대체 뭐예요?”

 

늦은 밤, K가 전화를 걸어서 씩씩댔다.

 

? 무슨 일인데?”

마이크 형 친구 중에 M이라고 있잖아요. 나보고 삼류대 나와서 무식하대요. 말끝마다 그렇게 무식하니까 삼류대 밖에 못 가지.’ 막 그러더라고요.”

걔는 나이도 먹을만치 먹은 놈이 요즘도 그러고 다닌다니?”

 

문득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그날 나는 원래 착한 사람인데 상처 때문에 엇나간 게 아니고, M은 그냥 원래부터 그런 놈이란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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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후, M은 짧은 직장 생활을 끝내고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조직 생활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했다. 자신보다 열등한 상사와 무능한 동기들 틈에서 아웅다웅하며 비비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휴대폰 판매점, 생과일주스 전문점을 열었다가 쓴맛을 보고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벌인 사업은 곱창집이었다. 소 곱창구이를 전문으로 했는데, 가격이 여타 곱창집보다 저렴한 편이었다. 개업 축하 선물을 들고 찾아갔을 때, 제법 늦은 시각인데도 문전성시를 이루는 사람들로 자리가 꽉 차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축하한다.”

이번엔 성공하겠다. 축하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 보기 좋더라. 성공해라.”

 

밤이 깊어지고 빈 테이블이 점점 늘어날 무렵, 잔을 들고 우리 테이블을 찾아온 M에게 덕담을 건넸다.

 

다들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

 

M은 고맙다고 성공하면 다 너희들 덕분이라고 공치사(空致辭)를 늘어놓았다.

친구들과 모인 자리는 늘 즐겁다. 누군가의 흑역사를 끄집어내서 낄낄대기도 하고, 고민이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경청하다 생뚱맞은 말로 맞장구쳐서 심각한 분위기를 단숨에 날리고, 엉뚱한 화제에 불꽃이 튀어 내가 맞네, 네가 틀리네! 한참을 입씨름하다 보면 어느새 자정이 훌쩍 넘어있다.

 

계산하고 가게를 나섰다. 담배를 피우는 친구 몇이 구름 과자를 먹겠다고 해서 가게 밖 한 켠, 재떨이를 놓아둔 곳에 옹기종기 모여 도넛을 만들며 낄낄대는데, 마이크는 말없이 영수증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아니…, 계산이 이상해서. 우리 전골 먹었나?”

안 먹었지. 모둠 세트 큰 걸로 두 개만 시켰잖아. 2차 가기로 해서.”

…….”

 

드르륵. 다시 가게 문을 열었다.

계산이 이상하다는 말에 M깜빡했다.’며 이마를 치고, 주방에 소리쳤다.

 

전골 대짜 두 개 포장이요!”

 

이게 뭔 소리지. 누가 전골 포장해 달라고 했나?

구름과자를 해치우고 어슬렁거리며 가게로 들어오는 친구들에게 물었다.

 

. 누구 전골 포장해 달란 사람 있냐?”

난 아님.”

나도.”

나도 아녀.”

 

M이 싱긋 웃으며 마이크를 쳐다봤다.

 

엄마 좀 가져다드리라고 포장했어. 하나는 집에 가서 먹고 하나는 어머니 가져다드려.”

우리 부모님 곱창 안 드셔. 나는 전골 안 먹고.”

제대로 된 걸 못 드셔봐서 그래. 가져다 드려봐. 깜짝 놀라실걸?”

근데 공짜로 주는 듯한 말투다?”

야야.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이럴 때 팔아주고 하는 거지.”

 

뭔 개소리를 이렇게 신박하게 하지?

 

좋은 말로 할 때, 다시 계산해.“

 

마이크의 말에서 냉기가 풀풀 날렸다.

 

전골이 워낙 인기 메뉴라 내놓기 무섭게 매진된다니까. 다들 돈 더 줄 테니까 제발 팔아 달라고 그런다고.”

그럼 먹겠다는 손님에게 팔아. 난 됐으니까.”

 

M거 쪼잔하네. 지가 안 먹어도 사줄 수는 있지.’ 카드 승인 취소하고 다시 결제하는 내내 구시렁거렸다. 열이 확 치솟았다. 내가 발끈해서 나서려는데 마이크가 손을 들어 막았다. “축하해주러 와서 판을 엎지는 말아야지.” 가게를 나서며 마이크는 그래도 곱창집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자 나셨네. 성자 나셨어.

 

그날 이후, 나와 다른 친구들은 M과 연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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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요즘도 M 만나냐?”

. 부모님 통해서 자꾸 연락하더라고. 보고 싶다고 애타게 찾는데 매정하게 끊기가 뭐 해서.”

인마. 그럼 너 혼자 만나야지. K를 데려가서 엄한 소리 듣게 해.”

내가 데려간 게 아니고 지가 왔어.”

 

마이크는 안 그래도 불편해서 자리를 일찍 파했다고 한다.

 

“M 말이야. 예전엔 안 그랬는데, 날이 갈수록 편협해지는 거 같어.”

예전엔 안 그런 게 아니고, 원래 그랬어.”

그래?”

그려.”

 

여름이 다가오나 보다.

뜬금없이 불쾌 지수형 인간이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