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된 일상에 삶이 무료해지면 수학 문제를 푼다. 거창하고 어려운 책을 붙들고 씨름하는 것은 아니다. 수능 대비 기본서와 평가문제집으로 나온 개념 정리용 문제다. 그렇게 한참 시간을 보내고 나면 녹슨 기계처럼 삐걱대던 뇌에 기름칠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역병이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작년에 중학교에 들어간 조카 1호는 한 해 동안 등교한 날짜가 채 두 달이 되지 않는다. 온라인 수업 시간엔 내용이 재미없다고 어딘지 모를 상상의 나라로 떠나고, 보습학원은 정부 지침에 따라 수시로 휴업을 거듭해서 공부의 흐름이 이어지지 않았다. 동생은 1호의 학습 능력이 떨어질까 봐 애가 탄다.

 

1호가 다니는 보습학원은 한 달에 한 번씩 시험을 보는데, 얼마 전 성적표를 받아보고 동생과 1호는 충격을 받았다. 50, 40, 55……. ‘집에서도 공부해야 하나 벼.’ 공부는 학원에서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던 녀석이 문제집을 사달라고 했다. 문제를 풀다가 어렵거나 이해가 안 되면 동생이 설명해주는데, 아무래도 수학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며칠 전 동생이 씩씩대며 전화를 했다.

 

오빠! 왜 사람들이 가족을 가르치면 안 된다고 하는지 이제 알것어.”

? 뭔데 속이 터지고 그려.”

“1호가 말여, 기껏 문제 풀어주믄 답안지대로 풀으랴. 근데 그럼 그게 그렇게 나온 원리를 설명해야 할 거 아녀. 그러잖어? 그럼 됐다 그랴. 답안지의 그 숫자가 왜 나왔는지만 말하랴.”

 

동생은 한참 동안 푸념을 늘어놓았다.

 

주말에 올래? 내가 함 설명해 볼게. 올 때 책 챙기는 거 까먹지 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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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전, 거실에 상을 펴고 1호와 마주 앉았다. 들고 온 문제는 부등식 관련한 여러 문제. 개념을 얼마나 아는지 물어보니 대답이 모호하다. 기본 개념부터 설명하고 문제를 풀었다.

 

이해했어?”

.”

정말?”

!”

…, 눈빛이 아니요, 저는 몰라요.’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미리 출력해둔 문제를 건넸다. 전날 동생에게 물어보고 1호가 모른다고 했던 문제와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잔뜩 만들어 둔 터였다.

 

제 누나가 공부하는 사이,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2호는 안방에서 TV를 틀어 놓고 온수매트 위를 뒹굴며 휴대폰으로 게임을 했다. 그러다 자꾸 문을 열고 고개를 쏘옥 내밀어 우리를 살피더니 제 엄마 품으로 갑자기 파고들었다고 한다.

 

엄마. 나는 삼촌한테 공부 안 배울래요.”

?”

자존심 상해서요.”

 

안방에서 터진 웃음이 거실 창을 비집고 마당으로 번졌다. 한가로이 일광욕을 즐기던 고양이들이 깜짝 놀라 줄행랑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