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무렵이었다. 마루에 엎드려 책을 보는데, 눈이 시리고 아팠다. 언젠가 귀가 몹시 아팠을 때처럼 방에 들어가 이불을 덮고 누웠다. ‘한잠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야.’ 꿈을 찍는 사진관을 찾은 남자인 양 소망을 가슴에 품고 잠이 들었다. 짧은 잠이 지나고 눈을 떴을 때, 아픔은 설익은 꿈인 듯 희미해졌다. 이후에도 통증이 간헐적으로 찾아왔지만,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면 서서히 열기가 가라앉았고 곧 참을만해 졌다.

 

안과를 찾은 건, 그로부터 거의 일 년이 지나서였다. 통증이 찾아오는 주기가 점점 짧아졌고, 지속되는 시간은 길어졌다. 어머니 손을 잡고 충주 시내에 있는 안과에 갔다. 증상을 이야기하자 의사 선생님은 내 눈을 한참 들여다보다, “이리 와볼까?”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빨간 불이 하나 켜져 있는 깜깜한 방이었다. “저 앞에 빨간 불 보이지? 저기를 봐.” 그는 자처럼 생긴 막대기를 내 눈에 대고 한동안 뭔가를 쟀다. 그리고는 다시 나를 진료실로 데려와 검안 의자에 앉힌 후, 한마디로 처방을 내렸다.

 

안경을 써야 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손바닥만한 종이에 뭔가를 열심히 적어 어머니께 건넸다. 영어랑 숫자만 잔뜩 쓰여 있어서 무슨 내용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그는 어디 멀리 가지 말고 아래층에 있는 안경점에서 안경을 맞추어야 처방대로 정확하게 맞출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안경 인생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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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닦이로만 안경을 닦는데도 기스가 생긴다. 일 년 정도 쓰면 렌즈는 기스투성이고 아무리 열심히 닦아도 뿌연 자국이 남아 처음의 선명한 느낌이 없다. 6개월마다 시력검사를 하고 일 년마다 렌즈를 교체해주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부지런한 인간이 아니어서 한 번 안경을 맞추면 2~3년 정도 사용한다. 사실 근 몇 년 시력의 변화가 없고 노안도 와서 책을 볼 때는 안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안경렌즈를 유리로 바꿔야겠다. 무겁고 외부충격에 취약하긴 하지만, 기스가 잘 나지 않고 플라스틱 렌즈보다 선명하다고 한다. 퇴근길, 안경원에 들렀다.

 

안경 렌즈를 유리로 바꾸려고요.”

유리요? 무거울 텐데요.”

 

안경사는 유리 렌즈는 무겁고 쉽게 깨져서 요즘은 찾는 사람이 드물고, 충격에 약해서 자기는 웬만하면 플라스틱을 권한다고 했다.

 

이 안경을 일 년 정도 썼는데요, 코팅이 벗겨졌는지 잘 닦이지 않고 기스도 잔뜩 나서 이참에 유리로 바꿔보려고요.”

안경 줘보세요.”

 

렌즈미터에 안경을 넣고 한참 들여다보던 안경사가 말을 꺼냈다.

 

이게…, 난시 도수가 높….”

안경 여기서 한 거예요.”

 

안경사가 렌즈미터에서 눈을 뗐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하는 표정이 드러났다. 그는 곧 몸을 돌려 컴퓨터가 있는 쪽으로 걸었다.

 

이름이 뭐예요?”

김찬샘이요.”

전화번호 뒷자리가 0000 맞아요?”

.”

 

어릴 적 안과의사처럼 안경사는 모니터를 보며 메모지에 뭔가를 잔뜩 적었다.

 

…, 내일 주문 들어가면 아마 모레쯤 렌즈가 도착할 거에요. 전화번호가 0000-0000 맞죠?”

.”

렌즈 도착하면 문자 드릴게요.”

 

결제하고 안경원을 나선 지 일주일, 아직 아무런 연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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