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집수리를 하다 아버지가 다친 이후 어머니는 한동안 저기압 상태였다. 어머니는 이런저런 걱정이 쌓여만 가는데, 아버지는 태평한 소리만 늘어놓아 속이 여간 타는 게 아니었다. 그러던 와중에 추석이 다가왔다. 예년 같으면 ‘언제 내려 오냐.’, ‘표는 예매했냐.’, ‘~좀 챙겨와라.’ 등등의 이야기를 꺼내실 분이 아무런 말씀이 없다.
“엄마. 차표 예매했어요.”
“그래. 늦지 않게 출발해라. 차 놓치고 심야 차 탄다고 전화하지 말고.”
여전히 저기압이신가? 반응이 영 션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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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음식 만드는 것을 도우며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길 나눴다. 내가 알지 못했던 어머니 혼자 답답하고 속상해서 끙끙 앓았던 일들이 꽤 많았다. 슬쩍 눈치를 보고 열심히 전을 부치고 어머니 말씀이 떨어지기 전에 다음 음식 준비를 했다. 자칫하다가는 화살이 내게 날아온다. 조심해 나쁠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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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먼 거리로 생수를 뜨러 갔다. 어머니는 내가 운전을 했으면 하셨지만, 어디 아버지가 운전대를 양보하는 분인가. 고관절 수술받은 지 3주 만에 운전하신 의지의 한국인이 바로 우리 아버지가 아닌가!
“엄마. 점쟁이가 나 올해 운전하지 말라고 그랬담서요. 뭘 해도 안 되니 복지부동하고 매사 조심하라고 그랬담서요.”
이종사촌 누나가 올해 초 내 운세를 봤는데, 그다지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 말을 어머니께 했고 다시 내 귀로 흘러왔다. 샤먼을 일종의 광대로 보고 있는지라 피식 웃고 말았는데, 또 이럴 땐 요긴하게 써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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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지 않게 내려와 꽤 오래 머물다 가는데도 아버지는 많이 아쉬워하셨다.
함께 있을 때,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아니고 살갑게 다가가는 자식도 아닌데 아버지의 표정에 드러난 아쉬움이 마음에 걸렸다. 이번엔 맥주 한 잔 못했다. 다음에 내려오면 아버지와 맥주 한 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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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이라 그런지 가을이 더디게 찾아온다. 다람쥐가 밤을 꺼내다 툭 떨어뜨리는 산책로를 걷다 보면 아직 코스모스가 지지 않은 작은 공원이 나온다. 시간이 조금만 더디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