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 소리에 깼다. 날이 환하게 밝긴 했지만, 여섯 시가 되려면 분침(分針)이 성큼성큼 세 걸음을 더 가야 하는 시각. 휴대폰 화면에 아버지 사진이 떴다. ‘무슨 일이지?’ 이른 아침 전화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걱정이 앞섰다. “. 아부지.” 목소리가 갈라졌다.

 

혹시 삽 어딨는지 아니?”
?”

내가 어제 쓰고 창고 옆에 세워 뒀는데, 밭에 갈라구 보니까 없어.”

 

맥이 탁 풀렸다. 집에 두었다는 삽을 서울에 있는 내가 어떻게 알겠나.

 

모르죠. 삽이 없어요?”

. 내가 분명히 잘 둔다고 여따 뒀거든? 근데 없네. 너도 몰러?”

. 거기 둔 게 아닐지 몰라요. 어따 뒀는지 함 찬찬히 생각해보세요.”

 

아버지는 정말 내가 삽의 위치를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전화를 하신 걸까? 하긴…, 언젠가 주말에 내려갔을 때는, 집에 막 들어서는 나를 보고 차키 못 봤냐고 물으셨던 적도 있다. 그때는 낮에 차를 쓰고 차키를 TV 앞에 놓았는데, 사라졌다.’혹시 아냐?’고 물으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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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건조하고 꽃가루가 날리면 아버지는 마른기침을 한다.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고 약을 드시지만, 약 기운이 떨어지면 다시 마른기침이 시작되어 환절기가 되면 나도 어머니도 걱정이 많다.

 

기침이 때와 장소를 가리는 건 아니어서 식사 중에 터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고개를 돌리고 입을 가리고 하라고 잔소리를 하는데, 그때뿐이다. 저녁을 먹을 때였다. 어머니가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은 음식을 살피러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린 사이, “콜록콜록아버지가 마른기침을 했다.

 

! ! 음식에 대고 그냥 기침하지!”

아녀.”

어따 했어?”

 

아버지가 식탁 한쪽에 놓인 컵을 가리켰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몸을 돌리고 하랬잖어. 거따 대구 한다구 음식에 침이 안 튀는 건 아니여.”

이렇게 했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컵에 대고 기침을 하는 시늉을 했다. 아이고 아부지! 왜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해요. 그냥 했잖아요.

 

에이~ 아부지. 아니 잖어요. 제가 다 봤어요.”

 

! 아버지가 수저를 식탁에 내려놨다.

 

에이씨. 밥 안 먹어!”

 

올해 열 살이 된 조카 2호의 모습과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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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무서웠다. 버럭 내지르는 호통에 벌벌 떨었고, 약주 한잔 드시고 큰 소리가 나면 불을 끄고 얼른 자는 척을 했다. 조금 커서는 아버지와 대립하고 날을 세웠다. 하시는 말씀이나 행동이 내 생각과 맞지 않으면 사사건건 따졌고, 아버지가 큰 소리를 내면 못지않은 큰 소리로 대들었다.

 

지금은 왜 그러셨을까.’ 이 생각을 먼저 한다.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가능함에 다다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다.

 

십여 년 전,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병원에 있다는 이야기길 듣고 헐레벌떡 달려가며 살아만 계셔달라, ‘그래 주기만 하면 앞으로 아버지 말씀에 절대로 화를 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때 아버지는 경미한 뇌출혈과 뇌진탕의 여파로 자신의 이름도 기억을 못했는데, 유일하게 나만 기억해서 찬샘이가 누구여?”라는 말에, “아들. 내 아들. 세상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이라고 하셨다고 한다.

 

단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왜 그러셨는지. 어릴 때는 말 붙이기 무서웠고, 조금 커서는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했다. 오만했다. 나는 아버지를 잘 알지 못했다. 이래서는 안된다. 아버지가 계신 병원으로 가는 내내 들었던 후회와 자책을 반복할 수는 없다. 이번 기회가 마지막일지 모른다.

 

이후, 종종 아버지와 문자와 카톡을 주고받는다. 회사를 그만둘 때도, 다시 취업할 때도 아버지와 상의했다. “그렇게 혀. 니가 뭔들 못하것냐.” 아버지의 응원이 큰 힘이 되어 당당하게 나왔고, 자신있게 입사했다.

 

아버지의 생각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 가능함의 영역은 아직 먼 것 같아, 한숨이 나올 때도 있지만, 뭐 어쩌겠나. 가고, 가고, 가다 보면 언젠가는 닿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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