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늘었다. 별것 아닌 일에 화가 치민다. 마음이 늘 명경지수와 같으면 좋겠는데, 사소한 일에 욱하는 것을 보니 도 닦기는 글렀다. 그래도 감정조절을 못 하는 건 아니어서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어도 버럭 화를 내지는 않는다. 덕분에 아직 내 히스테리를 눈치챈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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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대상포진으로 고생을 하고 컨디션 관리에 신경을 썼다. 예방 접종은 완치 후 최소 6개월이 지나야 한다고 해서 올해 8월쯤 맞기로 했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뜬금없이 허리가 아팠다. ‘잠을 잘못 잤나?’ 무거운 것을 들거나 무리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니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며칠 후 오른쪽 옆구리에 발진이 올라왔다. 작년과 과정이 똑같다. 그때도 그랬다. 허리가 먼저 아팠고 발진이 올라왔다. 약통을 뒤졌다. 작년에 먹다 남은 약이 있을 터였다.

 

약을 먹은 지 하루 만에 피부발진과 통증이 가라앉았다. 혹시 몰라서 사흘 더 먹었다. 이제 약은 이틀 치 남았다. 어머니께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씀드렸더니, 얼른 병원에 가보라고 성화다. ‘병원에 가서 약을 더 타다 놔. 또 언제 아플지 모르잖어.’ 통증도 가라앉았고 피부 발진도 거의 사라져서 굳이 갈 필요 있겠나 싶다.

 

엄마. 아직 약이 이틀 치 남았거든요. 이거 일단 다 먹고요, 혹 아프면 병원에 바로 가서 주사 맞고 약 처방받고 할게요.”

 

다음 날 저녁, 동생이 전화해서 어머니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

 

오빠. 나도 약 이틀 먹고 괜찮아져서 병원 가서 약 그만 먹어도 되냐.’고 물어봤다가 의사샘한테 혼났잖어. 대상포진은 최소 일주일은 약 먹어야 된댜. 얼른 병원 가서 약 더 타다 놔.”

약 아직 남았어. 뭐하러 약을 쟁여놔. 조제약은 유통기한이 언젠지도 모르잖어. 그리고 통증도 줄어들었고 발진도 이제 거의 사라졌어. 아프면 바로 병원에 갈게.”

그럼 오빠. 병원에 가서 물어봐. ‘지난번하고 똑같은 증상이 있어서 선생님이 처방해주신 약을 먹었더니 괜찮아졌다. 약을 더 안 먹어도 될까요?’ 이렇게.”

 

순간 화가 치밀었다.

 

하아! 약을 나흘 먹었어. 이틀 치 남았고. 6일이면 거의 일주일 먹는 거지? 통증도 가라앉았고 발진도 없어. 그런데 왜 가야 하지? 뭣 하러 약을 쌓아놔. 아플 때 바로 처방받는 게 좋은 거 아냐?”

그려? 나는 엄마가 오빠 약 이틀만 먹었다고 그래서…, 그래서 걱정이 되니까 그랬지.”

이틀만 먹은 게 아니고, 이틀 치가 남은 거야. 먹은 건 나흘 먹었고.”

알았어.”

 

풀이 죽은 동생의 목소리에 아차!’ 싶었다. 아무리 감정을 꾹 누르고 이야기해도 가족까지 속일 수는 없다.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하는 사람에게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미안혀. 화낼 일이 아닌데, 동생한테 괜히 지랄했네. 노총각 히스테린가 벼. 내일 바로 병원에 가서 네가 이야기한 대로 물어볼게.”

뭐어얼~ 이 정도 가지구! 오빠 사춘기 때 비하면 이건 암껏도 아니지! 헤헤헤.”

 

동생 목소리가 확 피었다. 미안했다.

 

다음날, 병원에 가서 증상을 이야기했다. “똑같이 아팠다고요?” 흡혈귀처럼 이 양반은 또 피부터 뽑는다. 먹지는 않는 것 같은데, 결과를 통 알려주지 않는다. 물어보면 그제야, “. 다 좋아요. 문제없어요.” 이런다.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았다. 나흘 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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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늘었다. 사소한 일에도 화가 치민다. 돌이켜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땐 왜 그랬나 싶다. 마음이 늘 명경지수이기를 바라나 파문(波紋)이 끊이지 않으니……, 도 닦기는 영 글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