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부산에 사는 이종사촌 누나네 잔치가 있었다. 역병으로 인한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참석 인원수가 제한되어 축의금만 보냈다. 신설동 사는 이종사촌 누나는 친언니네 잔치라 빠질 수 없다고 했다. 가족 모두 참석하기엔 인원이 많아서 매형과 누나 그리고 조카 4호가 부평에 들러 둘째 이모를 모시고 내려간다고 한다.
“용용이가 회사 차 빌려 온대. 그거 타고 가기로 했어.”
용용이는 조카 4호. 내가 서울로 유학하러 왔을 때, 잘 안 되는 발음으로 ‘아쭈(삼촌)~ 어부! 어부!’하던 아기였는데, 이젠 군대도 다녀오고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 한때 힙합에 빠져 케이블 TV 오디션 프로그램에 지원하기도 했고, ‘학교가 예술을 억압한다.’며 고등학교를 중퇴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제 엄마 속을 태우기도 했었다. 지금은 그 일을 추억처럼 이야기하지만, 그때 이종사촌 누나는 애가 끓어 울기도 많이 울었다. 1
“그래요? 이제 용용이가 운전도 해요?”
“그러~엄. 나보다 잘해, 야.”
출발 전날, 문제가 생겼다. 회사 차를 빌리지 못한 것이다. 사장이 주말에 차량을 운용할 일이 있다며 가져갔다고 한다. 렌트를 하려니 휴가철인데다 주말이라 마땅한 차가 없었다. 기차는 이미 매진. 천생 버스를 타는 수밖에 없는데, 멀미를 심하게 하는 둘째 이모가 걱정이었다.
“제 차 써요.”
“그래도 괜찮겠어? 너 주말마다 집에 내려가잖아.”
“버스 타면 되죠. 두 시간도 안 걸리는데요, 뭐.”
“고마워.”
“고맙긴요. 퇴근하고 차 가져갈게요.”
대입 시험 보러 상경한 이래로 이종사촌 누나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 그때 누나네는 단칸방에 온 가족이 살았는데, 시험을 앞둔 동생이 불편할까 봐 칭얼대는 4호를 업고 밖으로 나가 한참을 서성이며 잠을 재웠다. 입학하고 한동안은 이종사촌 누나가 밥과 빨래를 해줬고, 이후에도 나를 종종 불러서 고기를 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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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처남. 배고프지?”
“저녁 안 먹었지?”
아이고, 이 양반들 또 이런다. 나를 보면 밥부터 먹이려 든다.
누나가 아귀찜을 했다. 콩나물을 잔뜩 넣었고 내가 좋아하는 감자도 곁들였다. 매형이 냉동고에서 소주를 꺼냈다. “처남 이거 봐.” 병 바닥을 팔꿈치로 탁! 치자 소주가 하얗게 얼며 슬러시처럼 변했다. 잔에 소주를 따르자 살얼음이 왈칵 넘어왔다.
“처남. 차 빌려줘서 고마워.”
“에이. 뭐 이런 걸로요. 매형이 그동안 저 밥 사준 돈만 아꼈으면 집도 샀을걸요?”
“아냐. 아까 나는 니 말 듣는데, 마음이 턱 놓이더라. 엄마 모시고 버스 탈 생각하니까 앞이 깜깜했거든.”
누나와 매형은 봉제공장을 한다. 한때 어렵고 힘들어 휘청대기도 했지만, 두 분은 슬기롭게 헤쳐 나가며 그 시간을 버텨냈다. 생활이 안정되고 일이 순조롭게 풀리면서 매형과 누나는 ‘차를 사겠다.’고 했다. 매형의 로망은 한적한 낚시터에서 밤낚시 하는 것이고, 누나는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카트에 가득 담은 짐을 차까지 밀고 가는 게 꿈이어서 두 분의 차에 대한 열망은 컸다.
하지만, 돈이 모일만하면 사건이 하나씩 생겼다. 곗돈을 탔을 땐 건물 주인이 전세 보증금을 올려 달라고 했고, 적금은 차례로 1호, 3호 전셋집을 얻는 데 쓰였다. ‘이제 목돈 나갈 일은 다 끝났다.’ 싶자 역병이 터졌다. 그로 인해 매형과 누나가 하는 봉제공장의 일감이 많이 줄었다. 경기가 어렵고 소비가 위축되면 의류 시장도 침체하기 마련이다.
“처남. 처남의 드림 카는 뭐야? 이 매형이 처남 결혼하면 그걸로 웨딩 카 해줄게.”
“사나이는 포터죠! 색깔은 핫핑크!”
“왜? 짐칸에서 손 흔들며 퍼레이드라도 하게?”
누나가 혀를 끌끌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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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봄, 용용이가 회사로 찾아왔다.
“삼촌. 차 좀 빌려주면 안 돼요?”
“어디 가게?”
“아니오. 뮤비 찍으려고요.”
여전히 신촌 아티스트, 홍대 뮤지션을 꿈꾸는 조카는 꾸준히 곡을 만들고 노래를 부른다. 이번에 십 대 시절, 인생 처음 결성했던 크루 멤버들을 모아 기념 앨범을 만들었다고 한다. 기념 앨범인 만큼 뮤직비디오도 신경 써서 만든다고 했다.
“언제 필요한데?”
“이번 주 토요일이요. 하루만 쓰면 돼요.”
“보험 들어야 하는 거 알지?”
“네. 지난번처럼 하면 되죠?”
일요일 오후, 차를 찾으러 이종사촌 누나네 들렀다. 오늘도 어김없이 밥 타령을 해서 같이 저녁을 먹어야 했다. 집에 가려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최근 목적지에 영진항, 강릉 카페거리가 뜬다. 음? 이건 딱 데이트 코스인데? 뮤직비디오 찍는다고 하지 않았나? 집에 가서 블랙박스에 담긴 영상을 봤다. 아니나 다를까, 뮤비는 무슨……. 묘령의 아가씨와 데이트했구만!
‘자, 이제 이걸 어쩐다.’
조카를 골려 줄 생각에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 * 2차 예선에서 탈락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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