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가 일본에 갔다. 가을에 처남 결혼식이 있다고 한다. 그의 처가는 비행기로 세 시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곳이지만, 지금은 역병의 시대, 해외 출입국 시 자가격리가 필수여서 도무지 방문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올해 그의 처가엔 이벤트가 많았다. 봄에 교통사고로 장모님이 병원에 입원했었고, 여름엔 장인어른의 무릎 수술이 있었다. 백신접종을 2차까지 마쳤지만, 일본은 변이바이러스 유행지역, 자가격리 면제에 포함이 안 되는 곳이라 움직이려면 최소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어떻게 하지?”
“뭘 어떻게 혀. 입장을 바꿔서 생각혀 봐. 이게 고민할 일이냐?”
지난달, 마이크는 올해 벌어진 처가의 일과 아내의 걱정,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지금 못하는 건, 다음에도 못 해. 적당한 때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여. 나중에, 다음에, 시간 나면, 상황 좋아지면……. 우물쭈물 망설이다 후회하지 말고 지금 가. 지금이 바로 적기(適期)여.”
그는 곧 휴직했고 당분간 일본에서 머물겠다고 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어쩔 수 없지 않냐.’며 달관한 듯 보였던 그의 아내는 남편의 결정에 뛸 듯이 좋아했다고 한다. 늘 침착하고 감정의 기복이 거의 없는 아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모습은 프러포즈 때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어서 마이크도 놀랐다고.
“역시 너랑 얘기하면 명쾌해서 좋아.”
마이크는 남의 말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다. 이야기를 꺼냈을 때, 이미 그는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추스르고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을 것이다. 내가 한 건, 조언을 가장한 응원이었다. 그에게 필요한 건 자신이 내린 결론에 대한 확신과 응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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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의 출국을 며칠 앞두고 송별회를 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많은 인원이 모이지 못하고 주인공인 마이크 외에 K가 참석했다.
처음 떠올린 예정지는 카페 ‘별그림’이었다. 예약이 필수고 소수의 인원만 받기 때문에 송별회를 열기에 적당했다. 게다가 직접 로스팅한 다양한 커피와 갖가지 수제 맥주를 맛볼 수 있어서 종종 이곳을 찾았다. 예약하려고 전화를 했더니, 개인적인 사정으로 휴업 중이라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별그림’은 휴업이 잦다. 사장님 혼자 운영하기 때문에 외부 강연이나 여행 등의 이유로 문을 닫는 날이 많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다른 곳에서 만나야 한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짬뽕!”
그래. 당분간 얼큰한 음식을 먹지 못할 테니 그것도 좋겠다. 중식당에서 간단히 저녁 먹으며 고량주 한잔하기로 했다. 탕수육에 ‘빼갈’이 빠지면 뭔가 섭섭하다.
약속 시각 10분 전에 도착했다. K가 먼저 와 있었다.
“형! 내가 주문했어요!”
“어. 잘했어. 뭐 시켰어?”
“형들 꺼는 삼선짬뽕 시켰고요, 제 꺼는 쟁반짜장이요. 탕수육 대짜하고요.”
“쟁반짜장 기본이 2인분 아냐?”
“그게 어떻게 2인분이에요!”
깜빡했다. 얘 대식가(大食家)였지.
마이크가 도착했다. 요즘 매일 장 보러 다닌다고 한다. 오늘도 몇 군데 돌았다고.
“다아~ 일본에 있을 거라고 거기 가서 사자고 해도 통 말을 안 들어. 아주 다람쥐여, 산골짜기 다람쥐. 끊임없이 사서 모은다니까. 김은 얼마나 많이 샀는지 장사해도 될 거 같어.”
“형, 이번에 가면 얼마 만에 가는 거예요?”
“한 이삼 년 된 거 같은데?”
“에이~ 그럼 그럴 만도 하네요. 게다가 이번처럼 오래 있는 것도 처음이라면서요. 뭐, 선물도 사고 생활하면서 쓸 물건도 사고 겸사겸사 챙기는 거죠. 그래도 정작 현지에 가면 빼놓은 물건 있을걸요?”
“너 뭔가 좀 아는 거 같다? 여권도 없는 놈이.”
“아! 있어요! 외국물은 제가 제일 먼저 먹었다니까요!”
K는 선수 시절 전지 훈련하러 외국에 다녀왔다고 목에 핏대를 세웠다.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마이크에게 건넸다. K의 이야기를 듣다가 아차 싶었다. 술기운이 오르면 또 깜빡할 수 있어서 생각났을 때 얼른 줘야 한다.
“이게 뭐냐?”
“상품권. 면세점에서 홍삼 사서 어르신들 갖다 드려. 면세점에서 파는 게 쓴맛이 들해서 외국 사람 입에 맞는다더라.”
“뭘 또 이런 걸 줘.”
“술은 사지 말고. 술 사면 너 혼자 다 처먹는다면서.”
“아니거든! 내가 일찍 꽐라되서 그렇지, 술은 처남이 제일 많이 마시거든!”
음식이 나왔다. 빈 그릇에 짬뽕 절반 정도를 덜어내는데, 그 사이 마이크가 국물 한 숟가락 뜨고 “캬!” 감탄사를 내뱉었다. K가 잔에 술을 따랐다. “한잔해야죠!” 빈속이라 반 잔만 마시고 잔을 내려놨다. 양주건 소주건 고량주건 한 번에 마시는 마이크는 오늘도 첫 잔을 단숨에 들이켜고는 “크으!” 다시금 감탄사를 토해냈다.
“야. 근데 솔직히 말해서 우리 셋 중에 술은 내가 제일 세지 않냐?”
“뭐?”
“아, 형!”
마음이 아팠다. 술 한 잔에 맛이 가서 헛소리나 하고…. 요즘 힘들다더니 애가 곯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