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이 형은 대학 후배다. 학번은 네 학번 아래지만 나이는 여섯 살이 많다. 보통 늦은 나이에 학교에 들어오면 같은 처지 혹은 같은 또래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외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무게를 잡거나 점잔을 빼기 마련인데, 형은 그러지 않았다.
당시 우리 동아리는 서너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흡연자였고, 동아리방은 정리되지 않은 책과, 전날 혹은 전전날 음주의 잔해와, 뭉텅이로 곳곳에 흩어져 있던 A4용지가 담배연기와 묘한 조화를 이루어 처음 방문하는 사람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곤 했다. 이런 분위기에 적응하고 정을 붙이는 사람은 남고 아닌 사람은 떠나는 것이 당연하던, 오는 사람은 격하게 환영하지만 가는 사람은 굳이 막지 않는 마치 하루에 버스가 세 대정도 다니는 시골 면사무소 근처에 자리잡은 중국집과도 같은 분위기의 동아리에서 형은 한동안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느닷없이 청소도구를 사 들고 와 대청소를 하고, 동아리방에 냄새가 난다고 곳곳에 방향제를 설치하고, 뜬금없이 사랑고백을 했다가 차이고, 술 마시다 갑자기 여행을 떠나자고 바람을 집어넣고…….
때때로 걸이 형은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괴로워했지만, 당시 동아리 사람 중 형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졸업 후, 형은 이런저런 부침을 겪으며 힘들어 했다.
그래도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는 거라고, 불안해 하면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매주 복권을 사고 일주일치 행복을 샀다며 순박하게 웃었다. 비록 복권은 당첨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 매일 “행복해!” 라고 외치며 선배이자 동생인 한 사나이 가슴에 신라면을 들이붓고 있다.
오늘은 형의 피앙세께서 빛을 보신 날. 모처럼 형네 집에 모여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일이 끝나고 집에 들어서자 형수님은 음식 준비에 바빴고 형은 어정거리며 주방보조를 하고 있었다.
“형수님 제가 뭘 도우면 될까요?”
“아냐. 찬샘은 가만히 앉아있어. 손님이잖아.”
“오늘의 주인공이 요리까지 하시는 거에요?”
“몰랐어? 나 이런 뇨자야. 내 손으로 생일상 차리는 뇨자!”
걸이 형은 멋쩍은지 흐응~흐응~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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