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형은 소설 쓰는 시인입니니다. 20대 중반에 문예지로 등단한 꽤 전도유망한 시인이었고, 지금은 문단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중견인데 근 오 년째 소설 하나를 붙잡고 있습니다.
“가만있어 봐. 곧 있으면 대작 하나 나온다니까.”
내가 볼 때 소설은 영 아닌 것 같습니다만, 미련인지 매련인지 소설에서 손을 놓지 못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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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냈냐?”
“나야 뭐, 늘 그렇듯 잘 지냈죠. 형은요?”
“난 쓸쓸하고 외롭게 지냈지.”
숯불 위의 고기를 뒤집으며 코비형은 심드렁하게 말했습니다.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일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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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형은 만취하면 노래를 부르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잠이 들지요. 일종의 주사이긴 한데, 제가 형을 안 뒤로부터 지금껏, 그리고 형의 선배들이 형을 안 후로부터 지금껏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고칠 수 없는 형만의 음주 의식이라 이제는 그러려니 합니다. 다만 형이 만취하여 코를 후비기 시작하면 다들 서둘러 자리를 뜨곤 하지요.
층간 소음에 관대했던 10여 년 전이야 그런 주사가 용인되었습니다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사한 지 3일 만에 아래층에서 소음으로 신고하여 경찰이 출동했고 그 후로도 서너 번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세상 각박해졌다.’고, ‘노래하나 부르는 게 그리 큰 죄냐.’고 형은 한탄했습니다만 노래를 부르는 시각이 언제나 새벽이라는 게 문제였지요.
경찰이 문을 두드렸던 게 형한테는 큰 스트레스였나 봅니다. 오래전 노동운동을 하다 강제 입대를 한 이후 형은 공권력에 대한 불신 비슷한 것이 있었는데,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떠올리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래층이 뚝딱거리며 시끄럽자 코비형은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너희들도 당해 보라.’는 속셈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후 조금만 소란스러워도 바로 112에 신고를 했지요. 주사가 하나 추가되었습니다. 술 마시고 112에 전화해서 술주정하기!
“설 지나고 마음도 쓸쓸하고 해서 집에서 소주나 한잔하는데, 아래층이 시끄러운 거야. 문도 쾅쾅거리고. 그래서 112에 신고를 했지. 그랬더니 뭐라고 했는지 아냐?”
“뭐랬는데요?”
“한 번만 더 전화해서 술주정하면 나한테 찾아오겠대.”
“풉!”
불판 위의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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