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싯적 농사짓는 것이 싫어 몇 번의 가출을 감행했다던 코비형의 고향은 산을 몇 개나 넘어야 나오는 강원도 심심산골입니다.
“우리집은 될 놈만 공부시켰거든. 큰형은 장남이라 넷째 형은 지역에서 알아주는 수재라 대학을 보냈고 나머지는 나가리였어.”
자식들 하나하나가 소중한 일꾼인지라 농번기에 학교 빠지는 건 예사였고, 시험 전날 밤늦게까지 깨를 턴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둘째 형은 초등학교까지만 가르치고 농사를 짓게 했다는데, 일하다 한잔 두잔 들이켠 막걸리에 취해 못 배운 한을 푸념하는 게 일상이었다고 합니다.
“육학년 땐가 학교서 시험을 보고 있는데 어머니가 학교에 오신 거야. 일손이 모자라서 데리러 오신 거였어. 조퇴하고 집으로 가면서 결심했지. X 빠지게 공부해야겠다! 내가 살 길은 그 길뿐이다!”
이후 코비형은 학교서 두각을 나타냈고 대학은 물론 대학원까지 마쳤습니다.
선후배들이 간혹 귀농을 이야기하면 형은 흥! 콧방귀부터 뀝니다.
“농사가 어디 쉬운 줄 알어? 내가 그거 싫어서 가출만 다섯 번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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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신 후, 부모님은 작은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상추며 오이며 가지며 직접 농사지으신 채소들이 식탁에 올라옵니다.
오늘은 텃밭에 심은 마늘을 뽑는 날입니다. 낮의 햇볕이 제법 따가워 아침 일찍 혹은 오후 늦게 밭에 나가야 합니다. 마늘만 뽑고 마는 것이 아니라 두둑을 만들고 비닐을 씌워야 해서 아침 일찍 일하기로 했습니다.
눈을 뜨니 7시. 늦었습니다. 새벽에 깨서 한참을 뒤척이다 잠깐만 눈을 붙인다는 게 이렇게 되었네요. 어머니는 벌써 밭에 나가셨습니다. 잠결에 어머니가 깨우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날이 갈수록 아침잠이 많아지니 큰일입니다. 옷을 갈아입고 서둘러 나섰습니다. 잠귀가 밝은 우리집 댕댕이가 펄쩍펄쩍 뛰며 반가워합니다.
우선 두둑에 씌워 놓은 비닐을 벗겨야 합니다. 그리고 호미로 땅을 파고 조심스레 마늘을 뽑아야 하죠. 자칫하면 마늘을 찍을 수 있기에 저 같은 초보자는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여덟 시도 채 되지 않은 듯한데 햇살은 뙤약볕의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이 아직 서늘해서 다행입니다. 조금 더 부지런을 떨어야겠습니다.
아침 운동을 다녀오신 아버지가 삽을 들고 밭으로 오셨고, 일은 한결 빨라졌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일하는 스타일이 어머니의 맘에는 들지 않습니다. 쉽게 쉽게 빨리하려다 보니 간혹 마늘에 생채기가 나거든요. ‘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먹을 건데, 상처가 나면 좀 어때.’, ‘조금만 신경 쓰면 멀쩡하고 잘생긴 마늘을 얻을 수 있는데 뭐가 급하다고 그리 서둘러.’ 두 생각의 차이는 충돌을 일으켰고 중간중간 큰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수확한 마늘을 마당으로 날랐습니다. 늘어놓아 그런지 양이 꽤 많아 보입니다.
수확이 끝난 밭을 다시 일구고 두둑을 만들었습니다. 비닐까지 씌우니
깔끔하네요. 여기는 다시 깨를 심는다고 합니다. 장화는 먼지를
잔뜩 뒤집어썼고 몸은 여기저기 흙투성이입니다. 작은 텃밭이지만 지금껏 책상물림으로 살아온지라 쉽지 않습니다. 코비형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샤워를 하고 아침겸 점심을 먹었습니다. 방금 뽑은 마늘이 식탁에 올라왔는데, 아린 맛이 덜해 먹기 한결 수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