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의 도서관은 초등학교와 바로 붙어있습니다. 책을 보고 저녁나절 도서관을 나서면 아름드리 플라타너스가 경계목으로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이 훤히 들여다보입니다. 해가 길어 그런지 꽤 늦은 시각인데도 제법 많은 사람이 학교를 찾습니다. 트랙을 빙글빙글 돌며 운동을 하는 사람들,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공을 차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 데이트하는 학생들……. 다양한 사람들로 붐비는 사람들 속에 눈에 띄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박박 밀은 머리에 헐렁한 나시 티, 민망할 정도로 달라붙는 사이클 바지를 입고 노가다로 다져진 실전 근육을 자랑하며 운동장을 종횡무진 누비는 사나이. 녀석을 보면 저는 손을 나팔처럼 만들어 입에 대고는 크게 외칩니다.
“뻥까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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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까.
부모님이 지어 주신 이름이 버젓이 있음에도, 툭! 치면 쏟아지는 휘황찬란하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구라에 우리는 그를 뻥까라고 부릅니다.
“느네 그거 알어? 우리집 자전거는 콩나물처럼 쑥쑥 커. 맨날 자전거에 물 줬더니 어릴 때 타던 세발자전거가 어느 날 두발자전거가 됐잖어.”
“뻥까. 또 뻥치는 겨?”
“하~ 참! 느덜은 왜 사람 말을 안 믿냐. 너 이따 우리집 와바. 내 보여줄게.”
“야! 우리집 마당에 처박아 둔 자전거는 맨날 비 맞는데도 녹만 슬고 고대로 던대?”
“느집 콩나물은 비 맞고 크냐? 그늘에 잘 모셔 두고 조로로 맨날맨날 물을 줘야지 1!”
뻥까의 뻥은 이런 식입니다. 뜬금없고 얼토당토않은 말을 진지하게 하지요.
얼마 전 뻥까가 꽤나 심각한 얼굴로 ‘잠깐 이야기 좀 하자.’고 했습니다.
“찬샘아. 나 선본다.”
“오~ 우리 뻥까. 장개 드는겨?”
“몰러. 잘 해봐야지. 근데 여자들은 어떤 남자 좋아하냐?”
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니? 찌찌 냄새 맡아본 지가 백만 년쯤은 되었다!
“글쎄. 유머감각 있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나?”
“유머감각? 유머. 음…. 유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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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보고 온 뻥까는 조금 찝찝하다고 했습니다.
“다 완벽했는데, 하나가 맘에 걸려.”
“뭔데?”
이노베이션이 뭔지 아는 남자.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초고속 인터넷으로 검색할 줄 아는 남자, 뻥까는 밤새 유머를 검색하고 재미있는 내용을 엄선하고 연습까지 했습니다.
“빵빵 터지는 걸루 준비했지.”
매미가 왜 우는지 아세요? 맴이 아파서.
아침에 제일 야한 물건은? 이불! 개'야 해서.'
“아가씨는 뭐래?”
“좋다고 벙긋벙긋 웃더라.”
좋다고 웃은 게 아닌 거 같은데?
“점심은?”
“짜장을 기똥차게 비벼줬지. 근데 남기더라고. 있는 집 여잔가버.”
“또 빛의 속도로 먹었어?”
“아녀. 천천히 먹었어.”
식사를 마치고 뻥까는 그의 애마를 끌고 나타났습니다.
“타요! 집까지 모셔다드릴게.”
“괜찮아요.”
“사양할 필요 없어요. 요즘 세상이 험해서 그래요.”
“바로 앞에서 버스 타면 돼요. 걱정하지 마세요.”
“왜요. 내가 부끄러워요? 지금 오도바이 무시하나요?”
그의 애마는 125cc의 잘빠진 스쿠터.
유머감각 있는 와일드한 로맨틱 가이로 어필하고 싶었으나,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헬멧을 하나만 챙기다니요. 아가씨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36번 국도를 거침없이 달리는 것이 로망이었던 뻥까의 꿈도 그렇게 스러졌습니다.
“나를 준비성 없는 놈이라 생각한 건 아닐까?”
“뭐. 잘 헤어졌다며.”
“어. 인사도 하고 악수도 하고 그랬지. 근데, 찬샘아. 이 아가씨, 카톡을 안 읽는다? 1이 안 없어져.”
- 조로 : 물뿌리개. 일본어 じょうろ(jorro)에서 왔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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