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 춘이 결혼식에 갈 거셔?”
“가야죠.”
“그럼 나랑 같이 가.”
“그래요.”
“고마워. 사람들이 나 안 좋아해서 혼자 가기가 좀 그래.”
학교에 다닐 때부터 그랬다. 걸이형은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렸다. 정작 그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거나 오히려 걸이형 이야기에 호의적인 반응을 나타내는데, 스스로는 사랑받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군자역에서 만났다. 형은 손에 들고 있던 ‘솔의 눈’을 내게 건넸다. 눈이 벌갰다.
“어제 한잔했어요?”
“어. 회사 사람들하고 한잔했지. 마셔. 이걸 마셔야 술이 깨.”
“난 어제 술 안 마셨어요.”
“그래도 마셔. 몸에 좋아. 근데 Bob은 온대?”
“오겠죠. 빠질 녀석이 아니잖아요.”
“Bob 결혼식에 안 갔는데, 얼굴 어떻게 보지?”
형수님이 Bob을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아니 싫어해서 걸이형은 작년 Bob의 결혼식에 가지 않았다. “그렇게 가고 싶으면 가!”라며 으르렁대는 말에 어떤 남편이 감히 집을 나설 수 있을까. 그것도 크리스마스에.
“괜찮을 거예요. 뭐 시원하게 욕 한 번 먹으면 되지요.”
--- ** --- ** ---
후배 결혼식에는 꽤 많은 사람이 왔다. 우리와는 달리 인싸였던 티가 팍팍 났다.
사진을 찍고 식당으로 올라갔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 끼어 접시에 음식 몇 개를 담고 주위를 훑었다. ‘어디 앉아야 하나.’ 저만치서 누가 손을 번쩍 들었다. 구아바 형이다. 오늘 귀국한다는 이야길 들었는데 바로 이리 온 모양이다.
“이리 바로 온 거예요?”
“아니. 제기동 들러서 짐 내려놓고 그러고 왔지. 한잔해.”
자리에 앉지도 않았는데 잔에 맥주를 따라 건넨다.
“안녕하세요.” 얼굴이 바알간 후배들이 여기저기서 삐죽 고개를 내밀며 인사를 했다.
“찬샘아. 어떻게 된 거야. 나는 니가 제일 먼저 결혼할 줄 알았는데, 왜 아직 장가를 못 갔어? 서핸지 동핸지 하는 그 아가씨는 잘 있냐?”
또 시작이다. 내가 첫사랑이랑 헤어진 지가 언젠데, 결혼식장에서 마주치면 꼭 이 이야길 꺼낸다.
“뭐 형님이 아직 총각으로 늙고 계신데 어찌 동생이 먼저 가겠어요.”
--- ** --- ** ---
예식장을 나서자 찬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그냥 헤어지기 아쉽잖아. 어디 가서 한잔 더 해야지?”
“이 시각에요?”
“인마. 원래 술은 낮에 마셔야 제맛이야. 얼른 취하고, 네발로 걷고….”
이 양반 술 취하면 위험한데…. 잠깐 고민을 하는데, 누가 뒤에서 슬그머니 팔짱을 꼈다.
“헤헤. 형. 우리 꼬막 먹으러 가요.”
아이고. 징그럽다 이 녀석아!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산적 두목처럼 생긴 후배가 내 팔을 흔들며 징징댔다.
“지금 꼬막 파는 데가 어디 있어!”
“그럼 조개구이!”
식당을 찾아 한참을 헤매다 우리는 결국 택시를 타고 신림으로 갔다.
때 이른 송년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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