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어떡하면 좋냐.”
전화기 너머, 까르푸는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무슨 일이야. 차근차근 말해봐.”
“며칠 전에 시골서 엄마가 택배를 보냈는데, 그걸 먹어부렀다.”
“누가?”
“김치를 받은 놈이.”
어머니가 보내준 김치가 택배 기사의 실수로 다른 곳으로 배송되었는데, 택배를 받은 사람이 확인도 하지 않고 먹었다고 한다.
“콜센터에 연락해봤어?”
“아니. 택배 기사한테 내 택배 받은 사람 연락처를 주라고 했지. 근데 이 사람이 전화를 안 받아요.”
“네가 왜 그쪽에 연락을 해. 그렇게 해결할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
“택배 기사는 자기가 물어주겠다고 하는데 어찌 그러냐. 남은 거라도 찾아와야지.”
매년 까르푸의 어머니는 김장을 할 때, 객지서 고생하는 자식을 위해 김치를 따로 담그신다. 굴이 잔뜩 들어간 그 김치는 달고 아삭거리는 배추와 담백한 굴, 적당히 매운 양념이 한데 버무려져 밥도둑이 따로 없다. 거기다 김치만 보내신 게 아니라, 까르푸가 좋아하는 이런저런 반찬까지 같이 보내셨다고 한다.
“내가 되었다고 혔어. 물어 준다는데, 뭘 어떻게 물어 달라고 허냐. 일부러 실수하는 사람이 어딨겄어. 이미 벌어진 일, 수습이나 잘해야지.”
택배 기사가 책임을 지겠다는 말에 까르푸는 "일 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 다 먹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남은 것만 찾아서 가져다 달라."고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택배를 받은 사람은 연락이 되지 않고 다시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다 처먹은 모양이여, 다! 그니까 전화를 안 받지.”
까르푸의 택배는 돌아오지 않았다.
“김치는 어떠냐?”는 전화에 혹여 걱정하실까 차마 사실대로 말을 못 한 까르푸는 “맛있어요.”라고 대답을 하고 말았다고 한다. 군자에게 삼락(三樂)이 있듯 자신에게도 삼락이 있는데 그중 최고가 식도락(食道樂)이라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는 까르푸는 어머니의 김치가 어른거려 며칠을 잠을 설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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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이걸 어쩌냐.”
“왜? 또 뭔 일인데.”
“택배가 또 안 온다.”
김치가 떨어진 까르푸는 ‘새로 사야 하나?’ 고민하다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러자 누나가 “사긴 뭘 사. 내가 보내 줄게.” 굴 김치를 담가서 택배로 부쳤는데, 택배가 오지 않는다는 것.
“지금 어디 있는데?”
“집.”
“아니. 너 말고 택배 말야. 송장 조회해 봤을 거 아냐.”
“그게 이쪽 지역 대리점까지는 왔는데, 거기서 움직이지를 않어요.”
“전화는 해봤어?”
“주말에 원래 쉬는데 배송해 주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받지를 않어. 하아! 우짜믄 좋냐.”
“콜센터는?”
“택배 기사 하나가 관둬가지고 일손이 딸린단다. 토요일까지 배송해준다고 해놓고는 감감무소식이여.”
택배가 대리점에 도착한 지 일주일이 되도록 배송을 하지 않고 있었다. 저녁때 동네에 택배 차량이 지나다니는 것을 보면 이 동네에 배송은 하는 것 같은데 자기 물건은 배송이 안 되니 환장할 노릇이라고 했다.
“지난번에도 그러고 또 왜 그런 대냐. 콜센터말고 대표번호나 직통번호로 전화해서 따져.”
“하아! 꼭 이래. 사람들이 호의를 베풀면 호구로 받아들여요.”
지난 택배 오배송 사건을 힘들게 일하고도 얼마 못 버는 거 뻔히 아는데, 어찌 배상받겠냐고 그냥 받은 셈 치겠다고 하고 마무리 지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김치 못 먹어서 죽지는 않는다고 웃어넘겼다. 까르푸는 그랬다.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겠다고 악착같이 자기 몫을 찾아 먹는 것을 사회생활 잘하는 것으로 보는 요즘, 조금쯤 손해를 보더라도 인상 쓰지 않고 너그럽고 여유 있게 사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렇게 베풀어진 호의가 이렇게 돌아온다.
택배는 그로부터 3일 후, 지역 대리점에 도착한 지 10일 만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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