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의 해는 짧다. 아랫말 개복이네 잔치가 있어서 가서 음식을 해주다가 허리 펴고 일어서니 벌써 서산마루가 발갛게 노을로 물들었다. 외할머니는 서둘러 일어났다. 저녁을 할 시간이다. 잔치 음식이 담긴 소쿠리를 머리에 이고 집을 나섰다. 개복이 어머니가 오늘 고생했다고 이것저것 잔뜩 챙겨줘서 소쿠리가 제법 무거웠다. 어둠이 슬금슬금 길을 감추고 있었다.

 

강당댁! 강당댁!”

 

우물가를 지나는데, 누가 외할머니를 불렀다. '강당댁'은 외할머니 별호(別號)다.

 

누구유?”

 

우물가에서 외할머니의 허리쯤 오는 작은 사람이 튀어나왔다. 며칠을 안 씻었는지 꼬질꼬질한 차림새에 개 비린내가 심했다.

 

나아~ 배고파서 그런데, 먹을 것 좀 주믄 안 되나?”

 

혹 아는 사람인가 싶어 찬찬히 살펴봤는데, 초면이었다. 배가 오죽 고팠으면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았겠나 싶어 소쿠리를 내려놓고 그 위를 덮은 보자기를 걷었다.

 

일루 와봐유.”

 

옆에 와서 쭈그리고 앉은 사내가 괜히 안쓰러웠다.

 

청푸[각주:1]하고 수수떡인데 일단 이 걸루 배부터 채워유.”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사내의 뱃속에서 연신 꼬르륵 소리가 났다.

 

집에서 밥 해줄 테니께, 먹고 가유.”

아뉴우. 괜찮어유. 이제 배불러유.”

 

사내는 훌쩍 등장했던 것처럼 훌쩍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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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누가 쾅쾅 대문을 두드렸다.

 

강당댁! 강당댁!”

 

삐이걱.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왔다. 이상하게 조용한 밤이었다. 집안사람들의 코 고는 소리도 외양간 짐승들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누구유?”

 

! !

마당으로 뭔가 떨어졌다. 마분지로 둘둘 감싼 담뱃잎이었다. 처음엔 누가 장난하는 줄 알았는데, 양이 점점 많아지니 외할머니는 덜컥 겁이 나서 외할아버지를 깨우려고 사랑방 문을 두드렸다.

 

여봐유! 여봐유! 인나봐유!”

 

마당에 자욱한 안개가 목소리마저 삼킨 듯 말이 한 발자국을 넘어가지 못했다.

 

다음 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담배 농사를 짓는 이웃을 방문해 혹 사라진 담배가 있는지 물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사람들은 도깨비가 그랬나 부네.’ 허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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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게 여직도 의문이여. 큰 사우[각주:2]가 갖다 놓은 게 아닌가 싶어.”

 

삐이이익! !

외할머니 보청기에서 삑삑 소리가 났다. 이렇게 저렇게 조정하는데도 고주파 음이 한동안 계속됐다.

 

“거봐유, 엄니! 걔도 아니래잖어유.”

 

어머니의 농담에 웃음이 터졌다.

 

  1. * 청푸 : 청포묵의 충청도 방언 [본문으로]
  2. * 사우 : 사위의 충청도 방언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