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벙장이 서울에 왔다. 결혼 후, 인천에 자리를 잡고 자신의 식당을 운영하며 지박령으로 살아가던 그의 백만 년만의 외유였다.
“혼자여?”
“성!”
가족여행이라도 왔나 싶어 저녁을 같이 먹으려 했는데, 회사 앞 카페엔 피벙장 혼자 앉아 있었다.
“웬일이여. 엉덩이 무거운 양반이 이 먼 데까지 행차를 다 하시고.”
“성, 은민이 알죠?”
“모르지. 내가 얼굴을 봤냐, 말을 해 봤냐. 이십 년도 전에 니가 만났던 사람을 내가 어떻게 알어.”
김은민. 피벙장의 첫사랑. 그녀가 재혼한다고 결혼식에 참석해달라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됐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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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 손에서 자란 피벙장은 늘 정이 고팠다. 돌이켜 생각하면 남부럽지 않은 보살핌 속에 성장했다는데, 그러함에도 항상 허전한 무엇인가가 있었고, 그때 옆자리를 채워준 사람이 김은민, 피벙장의 첫사랑이었더랬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배우를 꿈꿨다. 학원에 다녔고, 보조출연자로 이런저런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다. 흡연하는 역을 하기 위해 담배를 배웠는데, 역은 날아가고 본인은 골초가 된, 서글픈 사람이라고 했다. 피벙장 월급의 대부분은 그녀의 배우 활동 지원비로 쓰였는데, 본인은 버스비 600원이 아까워 10분이면 충분한 출퇴근길을 30분이 넘도록 걸어 다니면서, 여자 친구는 짐이 많아서 안 된다고 걸어서 5분 거리도 택시를 타게 했다.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피벙장 부랄 친구 영배도 이해를 못 했다. 대체 어떤 사람인지 얼굴이나 보자고 저녁 약속도 여러 번 했는데, 피벙장의 여자친구는 번번이 펑크를 냈고 단 한 번을 보지 못했다.
그런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고?
“걔는 대체 뭔 생각으로 연락했댜?”
“그르게유. 남자가 초혼인가벼. 자리좀 채워 달랬대지 뭐유.”
“응? 직접 연락 받은 거 아녀?”
“영배한테 연락왔슈. 은민이하구 영배 와이프하구 친하잖어유.”
“결혼식이 언제라고?”
“담 주 토요일 이래유.”
“그날 나하고 술이나 마시자. 내가 인천으로 갈게.”
그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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