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더워라. 난 가끔 옛날엔 어떻게 학교 다녔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벽걸이 선풍기 넉 대로 여름을 났잖아.”
자리에 앉자마자 말이 쏟아진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하루에 쏟아내는 말이 상당할 텐데, 퇴근 후에도 말을 하고 싶을까? 한 시간 동안 차를 마실 때를 빼고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안 힘들어?”
“뭐가?”
“하루 종일 말하고 이야기하고 퇴근 후에도 이렇게 말을 많이 하면 말야.”
큰 눈을 두어 번 뗑굴뗑굴 굴리더니 내게 시선을 맞췄다.
“응? 나 말 많이 안 하는데?”
--- ** --- ** ---
오후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날 지하철은 사람들로 붐비고 복작댄다. 그 틈에 끼기 싫어 서둘러 일을 마무리하고 길을 나섰다. 조금 일찍 약속장소에 도착해서 책을 꺼냈다. ‘테드 창’의 「숨」. 절반쯤 읽었는데, 약속 시각 전에 다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오빠!”
전화기 너머에서 찢어지는 듯한 고음이 들려왔다.
“왜?”
“지금 비와!”
“하아~ 그러네. 지금 비가 오네.”
“어떡하지?”
“조심해서 천천히 와. 늦어도 괜찮아.”
“아니…. 나 우산이 없어.”
“학교에 아이들이 놓고 간 우산 많지 않아?”
“그걸 어떻게 건드려. 오늘 비 오는데.”
“음….”
“큰일이네. 비 맞고 갈 수도 없고. 비 맞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어떻게 되는데?”
“머리에 이 생겨! 이!”
비 오는 날 퇴근 시간의 지하철. 그 복작거림이 싫어 일찍 나왔는데, 어쩔 수 없이 사람들 틈에 끼어 노원으로 향했다. 학교 정문으로 들어서서 천천히 걷는데 부슬부슬 내리는 장맛비 사이로 멀리 낯익은 실루엣이 보였다.
“오빠!!”
운동장을 가로지르던 우산들이 반 회전을 그리며 빙글 돌았다.
나는 조금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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