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 후, 복학 전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보증금 마련’ 이었다. 2년 사이 서울의 집값은 무섭도록 뛰었고, 이전에 있었던 자취방은 내가 가진 돈으론 어림도 없었다. 아침에는 용역 사무실에 나가 일용직으로 여기저기에서 일을 했고, 저녁엔 중·고생 과외를 하며 돈을 모았다.
동생은 대학생이었는데, 자동차로 삼십 분이 넘는 거리를 버스로 통학하며 고생을 했다.
저녁에 시간이 맞으면 터미널에서 동생을 기다려 같이 집에 들어왔다. 별것도 아닌 일에 낄낄대며 이야기하다 “술 한잔할까?”라고 말을 꺼내면 동생은 “좋아! 오늘은 맥주 어때? 나 돌고래처럼 맥주 마실 수 있어!” 한 손을 하늘로 쭉 뻗으며 좋아했다. 그런 날은 발걸음을 돌려 슈퍼로 향했다. 그렇게 어떤 날은 맥주를 샀고, 어떤 날은 백세주를 마셨다. 중간에 술이 모자라 20여 분 거리의 읍내로 나가 술을 더 사 온 적도 부지기수였다.
그때 이야기를 하며 가끔 같이 술을 마신다.
매제가 술을 잘 못 마셔서, 그때처럼 많이 먹지는 못하고 편의점에서 행사하는 캔맥주 4개와 이슬톡톡을 사서 셋이 이야기를 나누며 홀짝거리다 보면 두세 시간은 금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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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 일이 있어서 갔다가 동생과 맥주를 마셨다.
머리를 하러 미용실에 갔다가, 오빠가 청주에 왔다는 연락을 받는 바람에 얼른 끝내고 부랴부랴 찾아오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고 했다. 여름이 오는 길목. 청주. 토요일 오후 세 시 반. 아직 문을 연 가게가 얼마 없어 삼십 여분을 헤매다 치킨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마음이 편한 사람과의 대화는 했던 애기를 또 해도 재미있다.
나도 동생도 술이 많이 약해져서 얼마 먹지도 않았는데 취기가 금세 올랐다. 이것도 나름 좋은 점이 있다. 빨리 취하고, 빨리 깨고.
“오빠. 우리집에 가서 한잔 더해.”
“집에 가야지. 혀 꼬이는 거 봐라. 많이 취했어.”
“으냉이가 오빠 왔다니까, 이쪽으로 온대.”
“어휴. 게네 커플 만나면 끝이 없어. 얼른 가야겠다.”
버스를 탔다.
잠깐 잠들었다가 깬 거 같은데 버스는 터미널로 들어서고 있었다. 여름이 오는 길목, 6월의 밤. 스쳐 지나는 시원한 바람이 술기운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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