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그녀를 소개해준 대학 동기의 별명은 ‘폭탄’이다. 심한 곱슬머리라 마치 폭탄 맞은 듯 보인다고 하여 그런 별명이 붙었다. 얼마 전, 그의 생일이 다가와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약속 시간은 오후 6시, 만남의 장소는 중간 지점인 답십리. 20분 전에 도착했다. ‘신호등 앞 다이소 안에 있음.’ 문자를 날리고는 다이소 안을 어슬렁거렸다.
“오빠!”
“일찍 왔네?”
“그으럼. 나의 무기는 바로 이! 5분 빠른 시계!!”
그녀는 막 변신을 마친 세일러문처럼 한 손을 이마 위로 척 올리며 손목시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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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부부가 시간 맞춰 도착했고 우리는 꼼장어 집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네 명이요.”
“네에. 아무 데나 편한데 앉으세요.”
다소 이른 시각이었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 탓인지 가게는 한산했다.
“오빠! 생일 축하해!”
그녀가 손에 든 쇼핑백을 내밀었다.
“뭔 선물을 다 사고 그려.”
“그거 다 오빠 거 아니야. 언니 것도 있어.”
말은 심드렁했지만, 얼굴에선 웃음을 숨길 수 없다. 나도 그렇지만 친구도 기분이 얼굴에 다 드러난다. 포커페이스와는 한 백 만년쯤 되는 거리에 있어 우리는 도박을 하면 안 된다.
“아가씨. 고마워요.”
“언니. 우리 학교 샘 남편이 브랜드 컨트롤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요, 한 번씩 해외로 출장 가면 가방이나 지갑 같은 거 직원 가로 싸게 살 수 있나 봐요. 부탁했더니 흔쾌히 들어주더라고요. 사실 그 선생님 반에 전에 제가 담임했던 아이가 있는데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엇나간 표현으로 해요. 그래서 잘 보듬어 주고 감싸 주어야 하는데, 그 샘은 약간 스파르타 식이라 애랑 잘 안 맞았나 봐요. 뭐 그렇잖아요. 우리 학교 때도 좋아하는 선생님 스타일이 각기 다 다르잖아요. 저는 고등학교 때 수학 샘이 그렇게 싫었어요. 맨날 앞에 나와서 문제 풀라고 하는 게 그렇게 싫었거든요. 근데 오히려 그게 좋다는 친구가 있었는데요……”
“잠깐만, 잠깐만.”
폭탄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넌 한 번에 딱 1분씩만 말해.”
“아 왜!”
“그렇게 말하면 입에서 단내도 안 나냐?”
“안나! 그리고 오빠! 왜 우리 엄마처럼 말하는데?”
“고모도 그러시니?”
“응! 나한테 집에 오면 10분을 초과해서 말하지 말래.”
아! 그 말씀이 왜 나왔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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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나면 한없이 반갑고 자주 보면 정겨워서 좋다. 내게 폭탄은 그런 친구다.
대학 시절, 수락산에 올라갔다 하산 길에 순댓국에 막걸리 한 병 마시고 지하철 타고 집에 가는 길,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 무작정 지하철에서 내려 들어섰던 집이 이런 꼼장어 집이었다. 꼼장어 이 인분에 소주를 세 병을 마셨네, 네 병을 마셨네…,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날 일이 마치 어제 일 같다.
“아이고. 또 시작이네.”
폭탄의 아내이자, 나의 동아리 후배 마일로가 한숨을 내쉬었다.
“언니. 뭐가요?”
“내가 아까 오면서 이 얘기를 계속 듣고 왔거든요? 꼼장어 먹을 때마다 매번 들었으니까 못해도 한 마흔일곱 번쯤은 들었을 거예요. 오늘은 두 번 들었으니까… 하아! 백 번은 채워야 그만하려나.”
“마일로! 말이 심하다?”
“뭐가!”
“그때 너도 왔었잖아.”
“갔었지. 갔었어. 가서 꽐라 두 명을 데리고 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응?”
“아니. 그 덕에 너희들 사랑이 응? 싹트고 응? 그날 응?”
“따라 하지 마라!”
속이 타는지 소주를 벌컥 들이켠 마일로가 숯으로 변해가는 꼼장어를 으드득으드득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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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추위가 찾아온다고 하는데, 알코올 덕인지 겨울바람이 차갑지 않았다.
“2차 가야지! 맥주!!”
“좋아!”
“나도 좋아!”
“찬성!”
꼼장어 집에서 나와 큰길 쪽으로 걸었다.
“야. 너 세일한댄다.”
“응?”
손가락으로 전봇대를 가리켰다.
겨울나무처럼 허리에 띠를 두른 전봇대에 광고지가 붙어 있었다.
‘창고 대 방출! 폭탄 세일!’
“이 자식이!!!”
뭔가 싶어 한참을 들여다보던 폭탄이 하얀 숨결을 내뿜으며 황소처럼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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