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빗방울에 눈발이 섞여 날리더니 오후에는 함박눈이 쏟아졌습니다. 오전 내 비가 함께 내려 눈이 쌓이지 않았지만, 이대로 저녁때까지 눈이 계속 내린다면 걱정입니다. 아버지가 아파트 경비 일을 하시는데, 혼자서 눈을 다 쓸어야 하거든요.
고향에서, 타향에서 평생 목수 일을 하셨던 아버지는 고향으로 돌아와 아파트 경비로 취직을 하셨습니다. 퇴행성 관절염으로 양쪽 무릎 연골이 다 닳아, 수술해야 하는데도 ‘사람이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면 일을 해야 하는 법’이라며 쉬려 하지 않으시지요. 끊임없이 감정 노동을 시키는 직장 일로 제가 힘들어할 때, “당장 그만두고 내려와. 괜찮어. 아부지 아직 일한다. 너 하나 먹여 살릴 수 있어.”라고 말씀을 하셔서 울컥하게 만들기도 하셨고요.
몇 년 전, 아버지는 심장에 스텐트 시술을 하셨습니다. 눈을 쓸다 갑작스레 가슴이 아파 주저 앉아서 한참을 고생하셨다기에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심장 혈관이 좁아져 있었습니다. 가는 혈관이고 찾기 어려운 부위라 담당 교수님이 꽤 고생을 했다네요. 시술 후 설명해주시는 데 상의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눈발이 날리면 더욱 걱정됩니다.
오전 내 진눈깨비가 내리다, 저녁 무렵엔 함박눈이 쏟아졌습니다. 전국 곳곳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졌습니다. 저녁을 먹고 아버지 일하시는 아파트로 갔습니다. 혼자서 눈을 쓸고 계시네요.
“뭐하러 왔어?”
“눈 쓸러 왔어요. 빗자루 어따 치웠어요?”
“아니… 낼 일 나갈 놈이 뭐 하러 와. 피곤하게.”
“피곤하긴 뭐가 피곤해요. 빗자루나 줘요.”
눈을 쓸었습니다. 잠깐 허리를 펴면 쓰으윽~ 쓰으윽~ 빗자루질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저만치 먼 곳에서 아버지가 눈 쓰는 소리가 들립니다. 가로등 사이로 바람에 춤을 추는 눈발이 보였습니다.
“인제 그만 가. 새벽에 한 번 더 쓸면 돼.”
한참 눈 치울 때 약해졌던 눈발이 집에 갈 무렵 다시 굵어졌습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종종걸음입니다. 외투에 달린 모자를 쓰고 아파트를 나서다 나온 자리를 흘끔 돌아봤습니다. 다시 눈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에 다시 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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