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았다. 봄볕이 따뜻했고, 바람은 포근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 봄은 성큼 다가와 우리 집 마당에 자리를 잡았다. 거실의 화분을 마당으로 내놓고, 멍멍이 밥을 주고, 마당에 앉아 화초를 흔드는 바람의 장난을 한참 구경했다. “뭐 혀?” 지나가던 동네 어른들이 대문 너머로 나를 보고 말을 붙였다.
“안녕하세요. 진지 잡수셨어요?”
“그러엄. 발써 먹고 밭에 갔다 오는겨.”
“네에. 들어가세요.”
“그려.”
이렇게 짧은 대화로 서로 안부를 주고받다 보면, 내가 고향에 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우리 집 멍멍이는 내 곁에 앉아 있다가 오가는 사람들이 말을 붙이면 때로는 짖고 때로는 끙끙거리며 반가워했다. 같은 동네 사람인데, 호오(好惡)가 분명하다. 아직 그 기준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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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뒷산에 올랐다. 느긋하고 여유롭게 걸어도 20분이면 정상이다. 사람들은 정비가 잘 된 둘레 길을 주로 걷고 꼭대기까지는 잘 오르지 않는 편이어서 정상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여기에 정자가 한 채 있는데, 동네를 내려다보며 커피를 마시면 기분이 끝내준다.
보온병에 담아간 커피를 마시며 물끄러미 동네를 내려다보는데, 웬 아저씨가 털레털레 검은 비닐봉지를 흔들며 다가와서 아는 척을 했다.
“이게 누구여. 찬새미 아니여?”
“어? 여긴 어쩐 일이냐? 등산이 젤로 한심하다고 하던 놈이.”
“하아! 그렇게 됐다.”
초등학교 동창이다.
녀석이 한심하게 생각하는 취미가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첫째가 낚시요, 둘째가 등산이다. 낚시는 ‘멍 때리며 수면을 바라보는 게 한심하다.’는 이유였고, 등산은 ‘어차피 내려올 거 뭐허러 올라가?’라며 ‘그럴 바에야 차라리 쇠질을 하라.’고 핏대를 세웠다. 그런 녀석을 산에서, 그것도 꼭대기에서 만나니 웬일인가 싶었다.
“여기가 내 아지트여.”
주말 아침, 일찍부터 놀자고 보채는 아이들과 서너 시간 신나게 놀고, 청소기 돌리고 빨래 널고 집을 나온다고 했다. 갈 데도 없고 딱히 불러주는 곳도 없어 막걸리 두어 병 사서 정상에서 마시고 내려가면 한 주일간 쌓였던 피로가 풀린다고.
“근데 넌 어쩐 일이여.”
“나도 뭐 갈 곳도 없고 불러주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왔지.”
“지랄헌다. 인마! 총각이 연애를 해야지! 다 살었냐? 내일이 지구 종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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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막걸리에, 안주는 친구의 아내가 싸준 부치기였다.
쏴아아~ 산정(山頂)에 부는 바람이 나무를 흔들었다. 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지 술기운이 다 날아갔다.
“우리 집 가서 한잔 더 혀.”
“똥 싸는 소리 하고 있네.”
“가자! 지금 시간이 일러서 문 연 데도 없어. 잠깐만 있어 봐.”
친구가 통화를 하다 내게 전화기를 건넸다.
“오빠! 이러기야?”
“응?”
“왔으면 우리 집에 들러야지, 왜 내빼?”
“내가 언제…”
“아! 됐고오. 같이 얼른 와. 알았지?”
친구의 아내, 내 동생의 친구, 어릴 때 한동네서 같이 놀던 녀석의 쨍한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흘러나왔다.
“맛있는 거 해주냐?”
“말만 해. 다 시켜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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