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여사는 4년의 짧은 서울 유학을 마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녀는 삼 남매의 막내인데, 오빠 둘이 일찍 출가한 터라 연로하신 부모님이 쓸쓸할까 걱정되어 직장을 고향에 잡았다. 선후배를 넓게 아우르고 마음이 따뜻한 그녀의 낙향이 우리는 아쉬웠고, 조심스럽게 서울살이를 권했지만 김 여사의 결심은 굳건해서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다행히 막내의 귀향 이후 부모님의 건강도 좋아지고, 김 여사의 직장 생활도 순탄해서 제법 생활에 여유가 있는 편이다.
저녁이면 부모님과 함께 키우는 개 을숙이를 데리고 동네 산책을 하는데, 얼마 전부터 이상한 사람이 자꾸 말을 붙인다고 했다.
“내 전생이 개 아니겠습니까. 누구보다 개의 마음을 잘 압니다. 지금도 대화를 나누고 있어요.”
그러면서 슬쩍 개를 만지려 손을 뻗는데, 그러면 을숙이가 손길을 피하고 으르렁거려서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이 개를 자극하지 말라고 타이르고 그녀도 몇 번 좋게 이야기를 했지만, 이 남자는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해코지를 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어서 신고할 수도 없었다. 산책 경로를 몇 번이나 바꾸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때마다 귀신같이 찾아와서 신경을 긁었다. 이야기를 들은 오빠들이 걱정되어 같이 산책을 하면, “오늘은 오빠도 같이 나오셨네요.” 하며 능글맞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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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목포에 다녀가는 길이었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가까운 시각의 열차는 모두 매진이었고 입석만 조금 남아있었다. 밤을 새우고 장지까지 다녀온 터라 편하게 가고 싶은 마음에 저녁에 있는 열차를 예매하고 역사 앞에서 맥주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 어데? ]
카톡이 날아왔다. 김 여사다.
[ 목포역 앞에서 맥주 마시고 있어. ]
[ 걸뱅이가? 건너와라. 누나가 쏠게. ]
[ 거기가 어딘데 여기서 가냐. 우리 집보다 더 멀어. ]
[ 함 와라. 니 나 내려오고 여기 한 번도 안 왔잖아. ]
그랬나? 아닌데…, 어머님 고희연 때 가지 않았나?
전화가 걸려왔다.
“거서 뭐 하는데? 차 기다릴 시간이면 이까지 온다. 부산까지만 와라. 내 그 앞에 딱! 차 대고 있을게.”
남은 맥주 세 캔을 가방에 집어넣고 목포 버스 터미널로 갔다. 다행히 금방 출발하는 버스에 자리가 있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얼른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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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믄 산책부터 하자.”
“산책? 뭔 소리여.”
“그런 게 있다.”
터미널 앞으로 마중 나온 김 여사는 나를 보자마자 대뜸 산책 이야기부터 꺼냈다.
“아니. 뭔 말을 해야 알 거 아녀. 그런 게 있다고 하면 다여?”
“하! 또라이 같은 섀키가 있다. 그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장장 한 시간 동안 전생에 자신이 개였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이제이(以夷制夷)냐?”
“뭐?”
“이이제이 아니냐고. 니가 지금 나를 또라이로 본다는 거 아녀.”
“풉!”
해가 길어져 여섯 시가 넘었는데도 아직 환했다.
김 여사의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을숙이를 데리고 함께 산책을 나섰다.
“안녕하세요.”
낯선 남자가 다가오자 을숙이가 왕왕 짖었다.
“내를 기다렸다고? 안다, 안다. 오늘은 사랑의 하트를 줄게. 뿅뿅.”
낯선 남자가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어 날리다, 갑자기 개를 향해 발을 굴렀다. 을숙이가 깨갱 거리며 김 여사 뒤로 숨었다. 그러면서도 짖기를 멈추지 않았다.
“뭡니까?”
“네?”
“왜 개를 자극하냐고요.”
“내가여? 언제?”
“지금 미친 듯이 짖는 거 안 보여요?”
“아, 그건 내를 사랑해서 그런 겁니다. 내가 전생에 개였거든요. 그래서 말이 쫌 통해요.”
“아저씨. 술 드셨어요?”
“왜요?”
“왜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시죠? 아! 본인도 본인이 개소리를 한다는 걸 인지하시나? 근데 맨정신에 그러면 더 이상하잖아.”
“자기야. 그만해.”
말도 안 되는 대거리를 주고받는데, 김 여사가 말렸다.
“흠…. 그래. 그만하지. 자네 체면도 있는데.”
김 여사 아버지가 넌지시 내 팔을 끌었다.
어라? 이 분위기 뭐지? 내가 사위 역할인가?
“아니요, 아버님.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요. 그동안 속 끓이셨다면서요.”
나를 잡는 손길을 뿌리치고 그에게 다가갔다.
“당신 저의가 뭐야? 왜 남의 여자를 스토킹해?”
그는 슬금슬금 뒷걸음을 치다 갑자기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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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훈제 오리와 오겹살이었다.
거실에 신문지를 잔뜩 깔고 자리를 잡은 우리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을숙이의 눈빛을 외면하며 상추에 고기를 얹었다.
“니 지짐이 좋아한다매.”
김 여사의 어머니는 자꾸만 음식을 만드셨고, 아버지는 아끼는 양주를 개시했다.
“아빠. 내가 말했지! 또라이는 또라이가 잡는다고!”
숨겨둔 비법으로 폭탄주를 만들어 한 잔씩 돌린 김 여사가 잔을 들며 호기롭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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