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차례 미뤄졌던 K의 결혼식이 5월
중순으로 결정되었다. 다만, 규모를 대폭 줄여서 양가 부모님과
소수의 친척, 그리고 몇몇 친구만 불러서 하기로 했다고 한다. 예식만 진행하고 식사는 패밀리 레스토랑 식사권으로 대체 한다고 한다.
“그려, 알았어. 계좌번호 보내. 축의금 보내줄게.”
“무슨 소리예요. 결혼식에 우리 형제들이 빠지면 되겠습니까? 형이랑 마이크 형은 필참입니다.”
“음…, 누구는 부르고 누구는 안 부르면 서운해할걸?”
“뭐, 다음에 다 부르면 되죠. 어차피 지금 같은 때, 결혼식 한다는 것 자체가 민폐에요.”
“다음에? 또 하게?”
“아오! 형!!”
장소는 예비 신부 모교의 소극장. 보내준 사진을 봤는데, 장소가 예뻤다.
--- ** --- ** ---
늦은 오후, 저녁이 가까울 무렵 문자가 틱! 날아왔다.
김○○, 이○○의 삼녀 김○○의 돌잔치가 5월 16일 13시 서울 ○○○에서 열립니다. 부디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국민은행 933***-**-******. 김○○, 이○○
고종사촌 형이다.
연락을 주고받지 않다 보니, 셋째가 태어났는지도 몰랐다. 그는 늘 이런 식으로 소식을 전한다. 그것도 아쉬울 때만. 어쨌거나 잘살고 있나 보다. 축의금을 보냈다.
고모가 어머니께 연락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돈을 보냈다고 말씀드렸다.
“아부지는 그래도 뭐 하나 해줬으면 하셔.”
“아부지한테는 제가 말씀드릴게요. 그 인간들은 참…, 무슨 염치로 이렇게 뻔뻔하게 연락을 할까요?”
“그러게 말이다. 버럭 화내서 괜히 아부지랑 싸우지 말고 잘 말씀드려.”
내가 동생을 생각하고 동생이 나를 챙기는 것처럼 아버지와 고모 사이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남매의 정이 있을 것이다. 비록 내가 고모와 그 일족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나로 인해 아버지의 마음에 생채기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 ** --- ** ---
까르푸가 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작년 말 아버지가 되었는데, 한 집안의 가장이자 아버지가 되었다는 책임감이 꽤 큰 무게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본래 한량과 건달을 꿈꾸던 인물이라 사무실 근무만 쳐내고 현장에 잘 나가지 않았는데, 회사에 정리해고의 칼바람이 불고 인원이 감축되자 호구(糊口)의 위기가 목을 서서히 졸랐다고 한다. 총각 때야 ‘뭘 한들 입에 풀칠 못 하겠어.’라는 생각으로 그러거나 말거나 심드렁했는데, 지금은 자신의 위치에 따른 결과가 아내와 아이에게까지 미치는지라 모든 일이 조심스럽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열심히 일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쳐 사무실과 현장을 오가며 서너 사람 몫의 일을 하다 허리디스크가 재발했다.
“제수씨가 고생이겠구먼.”
“그러게 말이다. 혼자 애 보는 게 장난 아닌디.”
“아픈 건 어뗘? 좀 괜찮어졌나?”
“아직 모르겄다. 그게…, 아프다 안 아프다 혀.”
“언제까지 입원하라는데?”
“이번 주까지는 경과 보자는데, 좀 나서면 얼른 퇴원 해야지. 왜? 오게?”
“어. 주말에 가려고.”
“아서. 수술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입원해서 수액만 달고 있는데 뭣 하러 오냐. 안 그래도 요즘 세상 험악한데, 민폐여 민폐.”
까르푸는 병문안을 극구 말렸다. 아내도 병원에 오지 못 하게 하고, 부모님께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안 심심하냐?”
“심심하지. 그럼 나 책 좀 보내줘라.”
“그려. 어떤 걸로?”
“소설. 단 권짜리로 해서 두꺼운 걸로 보내줘.”
“알았다.”
알라딘에서 ‘모비딕’을 주문했다. 수령지는 까르푸가 입원한 병원. 병원에서도 택배를 받아볼 수 있는 모양이다.
'섞일雜 글월文 (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제쯤에야 (0) | 2020.04.29 |
---|---|
그릇과 사람과 모니터 (0) | 2020.04.27 |
결정했다 (2) | 2020.04.20 |
이이제이(以夷制夷) (0) | 2020.04.16 |
산정(山頂)에 이는 바람 (0) | 2020.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