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쓴 글을 다시 읽으면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많다. 많은 글이 표현은 미숙하고 내용은 난삽하다. 그런데도 오우! 오늘 글빨 좀 받는데?’ 언제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솟아났고 신나서 자판을 두드렸다.

 

이 글은 2006년 봄, 집을 떠나야 할 시간이 임박해 일단 저장해두고 나중에 쓰려고 했던 글이다.

당시 주말에 공영주차장 관리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시급은 낮았지만, 주차장이 외진 곳에 있어서 대부분이 정기주차 차량이었고 시간주차는 얼마 되지 않아 자유 시간이 많았다. 하고 싶은 일은 많았고 돈은 없었던 내게 최적의 아르바이트였다.

 

평일 근무는 06~14/ 14~20/ 20~06시로 나뉘었다. 주간은 두 사람이 한 주씩 오전과 오후를 번갈아 근무했고 야간은 전담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일하며 재미있는 사람들을 꽤 만났는데, 그중 한 분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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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트 끝날 시간이 다가오면 업무일지를 씁니다. 예전에는 임의로 만든 업무일지에 근무 중에 일어난 이벤트나 공단 지시사항 혹은 자신이 한 일을 기록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아예 A3만 한 업무일지가 위에서 내려와서 양식에 맞추어 빈칸을 채워 넣습니다.

 

업무일지라는 것이 업무에 관련된 제반 사항이나 전달사항 혹은 처리사항 등을 적어 놓는 것인 줄 알고만 있었지요. 그런데 야간근무하시는 나이 지긋한 아자씨는 업무일지를 자신의 일기장으로 활용하시더군요. …. 그러니까 업무일지를 빙자한 일기의 탈을 뒤집어쓴 날적이가 되는 거지요. 그런데 난감한 건 이분이 한글을 초서체로 쓴다는 데 있습니다. 간혹 해독이 불가능한 글자들이 있지요.

 

그분이 기록하는 업무일지의 유형은 이렇습니다.

 

하나. 단순한 기분의 토로


아…. 요즘은 밤에 시간이 너무 안 가네. 다음 근무 교대자는 언제 오나.


야간근무의 고충을 털어놓는 솔직함! 밤에는 TV에서 재미있는 것도 안 한다고, 오가는 사람도 없고 가끔 공단에서 순찰 나와서 맥주 한잔도 못 한다고 아쉬워합니다.

 

. 다른 근무자에 대한 불만


내가 전에 돈 통에 10원짜리 50원짜리 잔뜩 넣어 놨는데 인마이포케뜨나 하구. 사람들이 양심이 있어야지.

 

'인마이포케뜨'가 뭐지? 고개를 한참 갸웃거렸습니다. 그러다가 한동안 잊었던 그 의미가 떠올랐습니다. 'in my pocket' 전문용어로 '쌔볐다', 업자용어로는 '업어갔다' 지역에 따라 '씹었다'라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는 대한민국콩글리쉬편찬회에서 발간한 '골목용어대사전'에 자그마한 글씨로 기록되어 있는 뜻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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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여기까지다. 세 번째는 주차하는 사람들의 비매너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던 것 같다.

1층 출입구에 화장실이 버젓이 있는데도 주차장 구석진 곳에 일을 보는 대변인, 장애인 주차 공간에 주차하는 얌체족(항상 같은 사람이 그랬다.), 두 칸에 걸쳐 주차하고 내 차에 기스나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고 되레 큰소리치던 멍청이……. 그날그날 자신이 겪은 진상에 대한 이야기가 소상히 적혀 있었다.

 

처음에는 글을 수정해서 한 편의 글로 완결을 지을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수정하다 보니 차라리 새로 쓰는 편이 낫겠다 싶고, 새로 쓰려다 보니 이미 시간이 14년이나 흘러서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두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래도 이대로 끝내기는 아쉬워 클라우드를 뒤져서 사진을 하나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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