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는 결혼에 이르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국제결혼을 반대하는 양가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고, 거주지부터 직장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쉽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야말로 ‘고개 넘으면 또 고개’였다. 일은 계획처럼 진행되지 않았고 많은 일들이 동시에 터져, 그는 그 시기를 ‘마치 헝클어진 혼돈의 시간 속을 걷고 있는 듯했다.’고 표현했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집에 들어섰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아닌, ‘아차! 프러포즈를 안 했구나!’ 하는 후회와 자책이었다. 아내는 ‘결혼을 준비하며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모습 자체가 프러포즈였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마이크는 그렇지 않았다.
“찬샘아. 어떡하지? 도와줘.”
D-Day는 결혼기념일. 우리는 깜짝 파티를 열기로 했다.
친구들을 모았다. 이런 일은 누구 한 사람이 떠맡기보다 브레인스토밍을 거치는 편이 좋다. 김 여사가 창원에서 올라왔고 당시 결혼 3년 차였던 폭탄이 아내와 함께 참석했다. 카사는 클라이언트와 중요한 약속이 있었는데 뒤로 미뤘고 깐돌이는 교수님이 참석하는 회식 자리에서 도망쳤다고 했다. 2012년, TV에서 기상캐스터가 평년보다 짧았던 장마가 오늘로 끝났다는 이야기를 전하던 날이었다.
--- ** --- ** ---
인터넷에서 꽤 화제가 되었던 프러포즈가 있다. 어느 파워 블로거의 ‘100명의 사람에게 응원 메시지 받기’라는 프로젝트다. 미국 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에게 화이트보드에 프러포즈 응원 메시지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상당히 낭만적이어서 그 아이디어를 변용하기로 했다. 당시 나는 한반도에 있는 날보다 해외를 떠돈 날이 많을 정도로 출장이 잦았고, 폭탄 부부는 여행을 즐겨서 주말이면 어디든 훌쩍 떠나던 터라 이 프로젝트는 폭탄 내외와 나 그리고 신기의 손기술로 영상편집과 PPT를 뚝딱 만들어내는 예술가의 혼을 가진 공돌이 카사가 맡았다.
마이크의 아내 하루카의 이상형은 손가락이 가늘고 긴, 기타를 멋지게 치는 남자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마이크의 손가락은 짧고 굵어 기타 코드를 짚으면 손가락이 다른 줄을 건드리거나 아예 두 줄을 짚는 일도 많아서 대학 시절 조금 배우다 때려치웠다. 마치 동굴 속에서 말하는 듯한 울림이 있는 매력적인 저음에 노래도 곧잘 하는 남편이 기타를 치지 못하는 것을 하루카는 늘 안타깝게 여겼다. “이번 기회에 기타 배우지?” 마이크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개인 교습은 한때 밴드 기타리스트로 활약했던 건돌이가 담당하기로 했다.
장소는 K가 하던 BAR를 하루 빌렸다. “형! 어차피 한 며칠 문 닫고 인테리어 다시 하려고 했어요!” K는 부담 갖지 말라고 큰소리를 뻥뻥 쳤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고 매출이 높은 주말에 문을 닫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관료를 극구 받지 않겠다고 손사래를 치는 그를 설득해 얼마간 돈을 송금했다. 장소를 꾸미고 음식을 준비하고 이벤트 순서를 결정하는 등 프로젝트의 총괄은 김여사의 몫이었다.
--- ** --- ** ---
마이크와 하루카 커플이 BAR로 들어서자 내 일도 아닌데 마음이 두근거렸다. 어제 모여 미리 동선을 짜고 시뮬레이션할 때 연방 실수하던 마이크가 오늘은 잘할 수 있을지, 낙원상가에서 대여한 앰프가 말썽을 부리지는 않을지, “하.하.하. 영화 보.시.죠.” 내내 로봇처럼 어색해하던 K가 산통을 깨지는 않을지……, 온갖 걱정이 밀려왔다. 어쩔 수 없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쇼는 시작되었다.
하루카는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찍었던 사진과 영상을 보는 자리라고 알고 있다.
빔프로젝터에서 쏘아진 영상이 스크린에 맺혔다.
'Heiraten ist Magie. Du hattest Recht.'
(결혼이란 마술이야. 네가 맞았어.)
“어? 이거 뭐야?” 화이트보드를 비추던 카메라가 사람의 얼굴로 이동하자 하루카가 입을 막았다. 마이크 부부의 유학 시절 절친이었다는 일리나가 자신이 쓴 문구(文句)를 담은 화이트보드를 들고 인사를 했다. 곧이어 그들의 유학 시절 친구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각기 화이트보드에 축하 문구를 담아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화면이 전환되고 이제는 낯선 이들이 등장해 그들의 언어로 둘의 결혼을 축하했다. 마지막엔 양가 부모님이 등장했다. 마이크의 부모님이 ‘내가 본 최고의 커플’이라고 쓴 화이트보드를 들고 “이렇게 잘 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일찍 결혼시킬 걸. 마음고생 하게 해서 미안하다. 우리 아들, 딸.” 손을 흔드셨고, 하루카의 부모님은 ‘いつも愛する(언제나 사랑해)’라고 쓴 화이트보드를 들고 “늘 너희를 생각하고 있단다.” 어줍은 고백을 하셨다.
암전. 스크린이 밝아지고 BAR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 연습하는 마이크의 모습이 화면에 등장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숨을 쉬던 마이크의 시선이 우리를 향했다.
“어떡하지? 큰일 났네.”
페이드 아웃. 정적.
어둠 속에서 마이크의 목소리가 울렸다.
“I don't know you. But I want you. All the more for that….“
영화 Once의 OST, ‘Falling Slowly’ 한때 마이크의 아내 하루카가 가장 좋아했다던 노래다. 불이 들어오고 빛이 기타를 치는 마이크를 비췄다. 아! 저 저음은 언제 들어도 매력적이다. 노래는 제이슨 므라즈의 ‘I’m yours’로 이어졌다. “……. But I won't hesitate no more, no more. It cannot wait, I'm yours…….”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 손뼉을 치거나 허벅지를 두드리며 박자를 맞췄다.
손가락만 떼었다 붙였다 하며 소극적이던 하루카도 마이크가 산울림의 ‘초야’를 부르자 자리에서 일어나 엄지를 척! 세웠다. 대망이 시간이 다가왔다. 바야흐로 고백 타임이다.
“……. 어쩌다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어. 미안해. 나랑 결혼해줘서 정말 고마워.”
“나도 고마워.”
하루카의 수줍은 대답에 환호성이 터졌다.
풍악을 울려라! 축제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