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엠씨스퀘어를 귀에 꽂고 늘 식물도감을 보던 유재는 교대에 진학했다. 유재가 다니던 학교는 인천에 있어서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일 년에 서너 번은 만나서 커피나 차를 마셨다. 그의 전공은 유아교육이었는데, 교대에서 전공은 딱히 의미가 없다며 심드렁했다. 하지만, 당시 집안에 서너 살의 조카나 사촌 동생이 있었던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유아용 책이나 교육에 관한 조언을 그에게 구했고 유재는 한 번도 귀찮아하지 않고 성심성의껏 대답을 해줬다.

 

대학 친구들도 그를 꽤 좋아해서 김여사나 깐돌이가 몇 번의 소개팅을 주선했다. 소개팅했던 상대와 잘 되지는 않았지만, 그 인연이 꼬리를 물어 알게 된 사람과 꽤 오래 연애를 했고 서른이 되기 전에 결혼식을 올렸다. 친구 중 첫 결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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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샘아. 전에 학원 한다던 국문과 선배랑 지금도 연락혀?”

희동이 형? 연락하지. ?”

아니…, 우리 애가 이번에 중학교 들었갔잖어. 근데 머 학교는 띄엄띄엄 가구, 학원은 열지도 않구, 애는 휴대폰만 디다보구 내가 아주 속이 터진다.”

지가 어련히 알아서 하겄지. 1짜리 갖구 뭐 벌써부터 속을 끓이냐.”

아녀. 우리 때랑 달러. 너는 학원 강사를 했다는 놈이 것두 모르냐.”

 

내가 희동이 형 학원에서 강사를 했던 게 대학 4학년 때였는데, 오래전의 기억을 끄집어내서 연결해달라고 다그치는 것을 보니, 속이 어지간히 타는 듯했다.

 

알었다. 내가 선배한테 전화해 보고 연락줄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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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유재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요즘 주말에 뭐 혀?”

이것저것 하지. 빨래에 청소에…,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

우리 애 공부 좀 가르쳐 주면 안 돼냐?”

뭔 소리여. 학원 강사 그만둔 지가 언젠데. 선배랑 이야기 잘 안 됐어?”

아니, 건 아닌데…, 네가 그 선배네 애들 둘 다 가르쳐서 좋은 학교 보냈대매.”

 

! 이 양반.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사람 곤란하게 만든다.

 

유재야. 그 형이 뻥이 심혀. 애들 고3 때 잠깐 봐준 겨.”

그려? 일 년이 잠깐이여? 그럼 나야 좋지. 우리 애도 쫌 봐줘. 나, 다 들었다. 큰 애는 중학교 때도 봐주고 고등학교 때도 봐주고 그래서 서울대 보냈다매.”

말 같은 소리를 해라. 내가 보낸다고 보내지냐? 지가 공부해야 가는 거지.”

그니까. 우리 애도 공부하게 쫌 잡아줘.”

 

언제나 말끝마다 군자는….’ 운운해서 고리타분하다는 이야기까지 듣는 녀석이 자꾸 떼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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