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생일 무렵이었다. “선물 어떤 거 받고 싶어?”라는 물음에 “밥이나 사줘.”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어디 그럴 수 있나. 알라딘에서 책을 주문했다. 청주는 당일 배송이라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조금 일찍 주문을 넣었다. 생일 하루나 이틀 전, 늦어도 당일에는 받아볼 수 있을 것이다. 밥은 서로 시간이 맞아야 해서 차일피일 끌다가, 같이 먹은 건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서였다.
조카들이 고기를 워낙 좋아해서 고깃집을 예약할까 했는데, 요즘 다시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추세라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동생네 집에서 먹기로 했다. 마장동에서 고기를 사고 근처 홈플러스에서 쌈 채소와 맥주를 카트에 넣었다. 조카들이 좋아하는 과자가 무엇인지 물어보려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우리 애들 이따 소고기 먹겠다고 점심도 안 하신댜. 과자 고른다고 시간 버리지 말구 그냥 얼른 와. 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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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추~운!!”
현관문을 열자 격한 환영이 나를 맞이했다. 거실 테이블 위에 전기 버너가 자리를 잡고 있었고 바닥에는 돗자리가 깔려 있었다. “오느라 고생했어요.” 주방에서 상추를 씻던 매제가 씨익 웃었다.
불판 위의 고기는 핏기만 가시면 사라졌다. 젓가락을 들고 매섭게 달려드는 아이들이 자칫하면 다칠까 얼른얼른 앞접시에 덜어주었다. 다람쥐처럼 볼이 빵빵해져서 우물거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아직 고기는 넉넉하게 남았는데, 뭐가 성에 안 차는지 자기들끼리 툭탁거리다 1호가 버럭 화를 냈다.
“이 오줌싸개가!”
“내가 뭘.”
“너 밤에 오줌 쌌잖아!”
“그게 왜?”
열 살짜리 동생의 느물거리는 말에 중학생이 된 1호는 더욱 화가 났다.
“너 오줌 쌌다는 거 소문낸다?”
“소문내.”
2호는 느긋했다.
“다연이 한테도 말해야지!”
다연이는 2호의 여자친구.
“말해! 삼춘은 학교서 똥도 쌌대는데 뭐.”
잠깐! 이게 뭔 소리지?
동생을 쳐다보자 동생이 다급히 2호의 입을 막았다.
“야!”
매제가 웃다가 배를 잡고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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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나는 학교에서 똥 싼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지렸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학교 대항 체육대회가 열려서 우리 학년이 응원하러 갔다. 반장이라 앞에서 응원을 이끄는데, 꾸르륵 꾸르륵 자꾸 배에서 신호가 왔다. 참을 만큼 참아보다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화장실을 찾아 나섰다.
“너 혹시 휴지 있어?”
“잠깐만.”
내게 반장을 빼앗겨 늘 새침하던 부반장이 부리나케 어딘가로 뛰어가더니 화장지를 갖다줬다.
“야! 찬샘이 똥 누러 간다!!”
화장실을 찾아가는 내 뒤를 아이들이 줄줄이 따라왔다.
“너 똥 누게?”
“여서 똥 눠?”
“진짜? 똥 눌 겨?”
낯선 학교, 낯선 장소를 헤매다 겨우 야외 화장실을 찾았더니 자리는 이미 만석이었다.
“다 찼네!”
“다 찼어!”
“지랄났네, 지랄났어.”
“거 빨리 나와. 우리 찬새미 급하댜.”
내가 참고 만다!
다시 우리 학교 천막 아래로 돌아왔다. 응원이 한창이었다. 견디다 보니 주기적으로 몰아치는 고통만 지나가면 참을만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방귀를 살짝 뀌었는데, 엉덩이가 뜨끈했다. 젠장! 뒤로 돌아가 확인하려는데, 누군가 소리쳤다.
“선생님! 찬새미 똥 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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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강하고 민감한 성격의 2호가 상처받을 게 걱정돼 나를 팔았다고 했다.
“뭐라고 했는데?”
“암것도 아니라고 했지. 느이 삼춘은 학교서 똥두 쌌다구.”
“그게…, 애한테 위로가 되는 말이냐?”
“그럼! 오빠. 2호 봐바. 얼마나 해맑어?”
동생의 미소는 2호 못지않았다.
“하아~~~”
내가 한숨을 내쉬자 2호가 내 어깨를 토닥였다.
“삼춘. 괜잖어. 어릴 때는 다 그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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