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부엌의 작은 문을 열고 나가면 내 방까지 연결되는 좁고 긴 공간이 있다. 집을 수리하며 생긴 공간인데 어머니는 그곳을 창고 겸 팬트리로 사용하신다. 양쪽 끝에 앵글로 선반을 짜서 수납공간을 만들었다. 전기 프라이팬, 냄비, 미역, 매실액, 젓갈…. 등등이 자리를 차지했는데, 언젠가부터 이런저런 물건이 하나둘 쌓이기 시작하더니 이젠 한참을 뒤적여야 원하는 물건을 찾을 수 있다. 선반이 블랙홀 화하여 카오스의 세계로 빠진 후, 자주 사용하는 간장이나 고추장 등의 양념이 바닥으로 내려왔다. 어머니는 늘 그게 불만이어서 벽에 선반을 매달았으면 하셨다.

 

“얘, 여기 선반을 매달면 어떻겠니?”

“괜찮긴 한데, 받는 힘이 약해서 무거운 것 올려놓기 나쁘지 않겠어요?”

“조심하믄 되지.”

“차라리 앵글로 선반을 길게 짜는 게 어때요? 튼튼하고 수납도 훨씬 많이 할 수 있고요.”

“하이고. 말두 꺼내지 말어. 저거 두 개 만드는데, 일주일도 더 걸렸어.”

 

양 끝 선반을 아버지가 앵글을 사다 직접 잘라서 만드셨는데, 완성하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아버지 일하는 스타일이 일단 해보고 안 되면 뜯어서 다시 하는 방식이라 언제나 시행착오를 겪는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재단까지 다 돼서 와요. 볼트, 너트 끼워서 조립만 하면 돼요.”

“선반 매달자는 소리를 내가 언제부터 했냐! 느 애비 어디 들은 신청이라도 허디? 것두 안 허는데 무슨 앵글이여, 앵글은.”

“제가 할게요.”

 

줄자로 길이를 가늠해보고 도면을 그려서 어머니를 보여 드렸다.

 

“좋네. 이렇게 하믄 좋지.”

 

인터넷으로 앵글과 부속품을 주문했다.

물건이 도착하면, 소싯적 과학상자 가지고 놀던 때를 떠올려 조립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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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생신이 다가와서 주말에 가족 모임을 하기로 했다.

일요일에 같이 밥을 먹기로 했는데, 매제가 금요일에 했으면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문제는 그 이야기를 금요일 오후에 해줬다는 것.

 

“오빠. 미안혀. 애들 아빠가 일요일은 집에서 쉬었으면 하는 눈치여. 오늘 일찍 끝난다고도 하고.”

“그려. 알었다.”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했다. “어쩔 수 없지, 뭐. 잘 다녀와.” 친구가 너그럽게 이해해주어 다행이다. 부모님은 예기치 못한 시간에 딸과 사위와 손주들이 방문한다고 해서 부랴부랴 장을 보러 나가신다고 했다.

 

집으로 가는 동안 ‘얼른 와’ 동생의 카톡과 ‘어디쯤이여?’ 어머니의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 “외삼촌! 우리 팽이 놀이해요!” 2호는 벌써 거실에 팽이를 늘어놓았다고 한다. 휴가철로 접어든 금요일 저녁임에도 차가 밀리지 않아서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매제가 앵글을 조립하고 있었다.

 

매제는 손재주가 좋고 일 처리가 깔끔하다. 우리집의 등을 LED 등으로 교체한 것도 매제고, 벽걸이 선풍기를 설치하고 정수기 필터를 교체한 것도 매제다. 처가에 발걸음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집수리할 때는 쉬는 날이면 늘 달려와 일을 거들었고, 지금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 있으면 자기가 나서서 해놓곤 한다. 현관 한쪽에 놓인 앵글을 보고 ‘이게 뭐예요?’라는 물음에 선반을 만들 거라고 하자 위치를 묻고는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처남 오려면 아직 시간 남았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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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삼겹살과 비교적 기름기가 덜한 목살을 구웠다.

바로 구워 먹는 것이 좋긴 한데 돼지고기라 기름이 많이 튀기 때문에 거실 한쪽에서 따로 구워 상위에 올리는 편이 낫지 싶다. 오늘의 화제는 조카들의 방학.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학교에 며칠 나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방학이다. 동생은 혹시 자식이 뒤처지지 않을까 몸이 다는 데, 1호는 천하태평이다. 난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고 보충은 EBS 교육 방송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지라 동생에게 학원보다 이용권을 끊어서 방송 보기를 권했다.

 

“온라인 수업이 싫다고 학교 가고 싶다는 앤데 EBS를 보겄어?”

“커리큘럼이 꽤 다양해서 자기에게 맞는 거 골라서 보면 괜찮은데, 왜.”

“몰러. 학교가 좋으시댜.”

“학교 수업이 적성에 맞나 보지.”

“아이구. 얘가? 가방 정리 한 번 하는 걸 못 봤네! 학기 초에 싸 놓은 가방 고대로오~ 들고 갔다가, 고대로오~ 들고 와서 지 방에 휙! 던져 놨다가, 또 고대로오~ 들고 가는데?”

“엄마! 공부는 유도리 있게 해야지!”

 

가만히 듣고 있던 1호가 끼어들었다.

 

“뭐 이눔의 지지배가! 어? 공부를 유도리 있게 하는 게 대체 어떻게 하는 건데?!”

 

동생이 버럭 화를 냈다.

내 동생은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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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합판을 사다가 잘라서 앵글 선반을 완성했다. 앵글의 힘 받는 면이 반대로 되어 있어서 다시 조립하는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매제가 틀을 잘 잡아 놓은 덕분에 수정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이불을 털고 청소기를 돌리고 정리를 끝냈더니 어느덧 저녁.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떠난 동생에게서 청주 시내 책방을 순회하고 집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