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오픈 마켓에서 산 반지갑을 아직 쓰고 있다. 지갑의 접히는 부분이 헐긴 했지만, 아직 쓸만해서 바꿀 생각은 없었다. 한 달여 전, 온라인 장터에서 미사용 반지갑을 판매한다는 글을 보고 뭐에 홀린 듯, 판매자와 연락을 주고받았고 돈을 보냈다.
베지터블 가죽으로 만든 지갑이라고 했다. ‘베지터블 가죽이 뭐지?’ 검색해보니 이런저런 설명이 나온다. 그럴싸한 말로 포장을 하긴 했지만, 설명을 관통하고 있는 요지는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 베지터블 가죽을 관리하는데 사용한다는 가죽 에센스를 주문했다.
지갑과 에센스가 같은 날 도착했다.
택배 상자를 열어보니 왜 관리가 필요하다고 그러는지 감이 왔다. 때 타기 쉬운 재질이었다. 에센스를 꾸준히 발라줘서 길을 들인 후 사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에센스를 1회 바른 후 찍은 사진이다. 원래 색은 이보다 연하다.
하루에 한 번씩, 매일 에센스를 발랐다. 보름 정도 지난 뒤의 사진이다. 제법 색이 진해졌다.
2~3일에 한 번씩 에센스를 발랐다. 한 달 정도 지난 뒤의 사진이다. 보다 색이 진해졌다. 이제 서너 번만 더 길들이면 사용해도 되지 싶다.
참나무 책상을 길들이기 위해 마른걸레로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문질렀다는 이어령 작가님의 정성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1, 한 달 남짓 길들이려 정성을 쏟았더니 나름 괜찮은 색이 빚어진 것 같다. 이제 지갑에 돈을 가득 채울 일만 남았다.
- 이어령, 「삶의 광택」, '나는 그 참나무 책상을 길들이기 위해서 마른 걸레질을 했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문지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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