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집은 어뗘? 괜찮어?”
유례없이 길게 지속되는 장마에 친구를 만나면 서로의 안부보다 고향 소식, 부모님 안부를 먼저 묻는다. 방송이고 인터넷이고 뉴스의 첫머리는 연일 비 소식이다.
“어제 TV 보다가 깜짝 놀라부렀다.”
“왜?”
“많이 보던 데가 나오는 겨. 얼라리? 낯이 익다? 하는데, 글씨 우리 동네여.”
“아이고. 우짜냐. 부모님은 괜찮으셔?”
“다행히 우리집은 지대가 높아서 괜찮여. 근데 어릴 때 놀던 데랑 학교 가던 길이 다 잠겼드라고.”
‘얼른 비가 그쳐야 할 텐데…’ 까르푸의 우산이 살짝 들렸다. 하늘을 쳐다보는 그의 얼굴에 걱정이 서렸다. 우산에 내려앉던 이슬비가 부스스 얼굴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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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식당을 찾지 못해 호프집에 들어가서 골뱅이 소면을 저녁 삼아 먹기로 했다. 까르푸는 음식 냄새가 옷에 배지 않는 곳으로 가고 싶어 했다.
“밖에서 밥 먹고 들어오믄, 그렇게 뭐라고 해싸. 저만 맛있는 거 먹고 왔다고. 어쩌겄냐. 이렇게라도 해야 욕을 들 먹지.”
자리를 잡자마자 까르푸는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학창 시절, 결혼 후 가정적으로 변한 선배들을 보며 ‘나는 저렇게는 안 산다.’고 단언하던 그의 모습이 스쳐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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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 웅-
까르푸의 휴대폰이 연신 울었다. 아내로부터의 카톡이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답장을 재촉하는 가톡의 폭격이 시작되기에, 그는 전화기를 들고 내내 스탠바이다.
“아씨! 안 되겄다! 도저히 이렇게는 못 살겄어!!”
까르푸가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자기야. 자리에 앉은 지 10분밖에 안 됐잖아. 아직 음식도 안 나왔어. ……. 아니 그게 아니고, 마땅한 식당이 없어서 일루 온 거지. ……. 알지 자기 힘든 거. 그럼 내가 30분 안에 일어날게. ……. 아냐, 괜찮아. 어차피 찬샘이도 잘 안 먹어. ……. 뭐 사다 줄까? ……. 알았어. 그럼 이따 봐. 사랑해요.”
휴대폰의 종료 버튼을 눌러 통화가 완전히 끊어졌음을 확인한 까르푸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요! 여기 소주 한 병 주세요!”
“힘들게 산다.”
“느이 엄니가 그랬대매. 다 돌아옹께 입바른 소리 하지 말라고. 내가 딱 그짝이다.”
소주가 나왔다. 반쯤 남은 500cc 맥주잔에 그대로 부으려고 하는 걸 말렸다.
“내비 둬. 얼른 먹고 가야혀.
“알았어. 그거 나 주고 소맥잔 달라고 해. 병맥주 시키고.”
새로 나온 잔에 맥주와 소주를 섞어 건넸다.
“한 잔만 더 주라.”
단숨에 술을 들이켠 그가 잔을 더 청했다.
“크으…. 찬새마 나 사기당한 거 같어.”
“뭐? 사기당했다고?
까르푸는 지인에게 몇 번 뒤통수 맞은 적이 있다. 걱정됐다.
“어. 우리 와이프 눈 사이 콧대 부분에 뭐가 볼록 올라 오드라고. 병원 가라 했는데 계속 미루더만, 어제 동네 병원 갔더니 큰 병원으로 가라는 겨.”
“응? 왜?”
“뭐 낭종인가 그렇댜. 근데 웃긴 게 뭔지 아냐?”
“뭔데.”
“우리 와이프 코 수술했다.”
“풉! 코를?”
“어. 눈 한 거는 알고 있었는데, 코를 했는지는 몰랐네. 낭종인가 머시긴가 그게 코에 있는 실리콘이랑 유착돼서 거기선 못 한다고 딴 데로 가라고 하드라고.”
“어디…, 대학병원으로 알아봐야 하나?”
“아녀. 그렇게까진 아니고 딴 병원 소개받았어. 어쩐지 우리 혁이 콧대 보믄서 자꾸만 ‘코는 오빠를 닮아야 하는데, 오빠를 닮아야 하는데.’ 그러드라고. 그래서 내 그랬지. ‘아니, 자기 코 괜찮어! 우리 애 코는 누굴 닮아도 이쁘니께 걱정하지 말어.’ 근데 그 코가 성형한 콘지 누가 알었겄냐!”
맥주 두 병과 소주 한 병이 금세 사라졌다.
안주가 나왔다. 까르푸의 휴대폰이 다시 웅- 웅- 울었다. 벌써 30분이 흘렀다.
“일어스자.”
뒤늦게 나온 골뱅이&소면을 고스란히 포장해해서 까르푸 손에 쥐어 줬다.
“집에 가서 같이 먹어.”
“고마워. 내 맘을 알아주는 사람은 역시 너배끼 읎어.”
집에 가는 버스가 왔다.
버스에 올라 창밖을 보니 까르푸가 비닐봉지 든 손을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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