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컴퓨터에서 굉음이 났다. 인터넷 브라우저 창을 여러 개 띄우거나 유튜브 영상을 틀면 여지없다. 5년 전, 컴퓨터를 조립할 때 이전에 사용하던 파워렉스’ 500w 파워 서플라이를 재활용했었다. 작년에 전원 버튼이 말썽을 부릴 때, 이상하게 그게 찜찜했다. 컴퓨터 내부 청소를 하는 김에 파워 서플라이도 교체해야겠다. 인터넷으로 서멀 그리스와 마이크로닉스’ 600w 파워 서플라이를 주문했다.

 

집에 가는 길,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바람에 날리던 낙엽을 밟으며 걸었던 게 얼마 전이었는데, 저녁 무렵의 나무는 잎을 모두 떨구고 휑하게 가지만 팔을 벌리고 있었다. 오후 햇볕은 따가웠지만, 해가 지자 바람이 제법 차다.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고 있었다.

 

찬샘 씨, 바빠?”

아뇨. 집에 가는 중이에요. 말씀하세요.”

저번에 주문해준 프린터기 있잖아. 벌써 컬러 토너가 다 나갔어.”

 

봄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무실에서 쓸 레이저 프린터기를 알아봐 달라고 해서, 적당한 걸 추천해준 적이 있다.

 

처음에 들어있는 번들 토너는 절반 정도밖에 안 들어있을 거예요.”

그래? 그럼 어떡하지? 토너 주문해줄 수 있어?”

알았어요. 지금 밖이거든요. 집에 들어가서 주문해 드릴게요.”

오늘 주문하면 언제 받을 수 있지? 내일 받나?”

오늘 주문해도 접수는 내일 될 테니까, 모레쯤 받을걸요. 급하게 써야 하면 이마트나 홈플러스 가보세요. 거기서도 살 수 있어요.”

아냐. 부탁 좀 할게.”

 

마트에 들렀다. 요즘 이상하게 과자가 당긴다. 썬칩 한 봉지를 샀다. 크기가 꽤 크다. ‘태양처럼 산다, ~언 칩.’ CM송을 흥얼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이걸 언제 다 먹나. ‘되는대로 먹지, ~언 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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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너를 주문하고, 컴퓨터를 분해했다. CPU 팬을 분리하자 서멀 그리스가 지점토처럼 후드득 떨어졌다. 이러니 굉음이 났지. 에어 스프레이를 분사해서 먼지를 모두 털어냈다. 다른 부품도 하나하나 그렇게 청소하고 다시 조립을 시작했다.

 

열한 시쯤 울산에 사는 이종사촌 형이 전화했다.

 

찬샘이가? 어데고?”

집에 있죠.”

맞나?

 

술이 얼근히 올라온 목소리다.

 

니 스틱 끌 줄 아나?”

. 어디신데요? 서울이에요?”

. 먼 데 있다. 내가 이따 전화하께.”

 

이 양반은 가끔 이렇게 뜬금없이 전화를 한다. 대개 잠들 곳이 마땅치 않아 하룻밤 신세 지고자 할 때다. 때때로 말없이 집으로 찾아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만취한 경우가 다반사였다. 지난겨울에는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다음날 탈이 나서 병원에 데리고 가서 수액을 맞히기도 했다. 잠시 후, 이종사촌 형수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이고. 니한테 또 전화했나?”

무슨 일로 서울에 온 거예요?”

친구 부모님이 돌아가셨단다.”

….”

상가에서 밤새고 바로 내려오라 했는데, 그걸 못 참고 전화를 해싼노.”

하하하. 많이 피곤한가 보죠.”

내가 말해서 거기서 바로 내려오라고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자라. 내일 출근하는 사람 잠도 못 자게 뭐 하는 짓이고.”

괜찮아요. 어차피 오늘 할 일이 있어서 늦게 자려고 했어요.”

 

한밤중, 컴퓨터 조립을 다 끝마칠 때까지 이종사촌 형의 전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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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현관문을 열자 찬 기운이 훅! 밀려들었다. 겨울이 슬쩍 발을 들이민다. 오후 햇볕도 따갑지 않았다. 바람에서 시베리아 냄새가 났다.

 

컴퓨터의 굉음은 사라졌다.

고요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