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때 우리에게 와 품에서 재롱을 부리며 많은 추억을 안겨준 멍멍이가 짧은 여행을 마치고 그의 별로 돌아간 후, 부모님은 이제 더는 어떤 동물도 반려로 삼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낮에 마당을 뛰놀며 굳건하게 집을 지키던 존재가 사라져서 그런지 문을 두드리는 잡상인이 늘었다. 창고 옆에 걸어 놓은 마늘도 누군가 집어갔다. CCTV를 설치하기로 했다.
설치는 매제가 했다. 크리스마스이브였다. 20년 가까이 보안설비 일을 해온 노련한 솜씨가 빛을 발했다. CCTV가 마당, 현관, 창고 어느 한 곳 사각지대 없이 비췄다. 부모님은 처음엔 신기하고 좋았는데, 나중에는 리모컨을 조작해서 TV로 확인하는 것이 불편하신 듯했다. 남는 모니터를 본체에 연결해서 별다른 조작 없이 화면이 출력되도록 했다.
“점점 바보가 되는 거 같어. 죙일 CCTV 화면만 들이다보는 겨.”
“하하하. 엄마. 그게 신기해서 그래요. 한 일주일쯤 지나면 괜찮을 거예요.”
모니터에 연결하자 또 나름의 불편함이 있긴 했지만, 부모님은 금세 신문물에 적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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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정오 무렵 어머니가 욕실 문을 두드렸다. 머리를 감는 중이었다.
“쫌 나가봐. 누가 왔나벼.”
수건으로 머리를 벅벅 문지르며 현관문을 열었다. 낯선 아주머니 두 명이 문 앞에 서 있었다.
“누구세요?”
“교회에서 왔어요. 헌금 좀 하시라고요.”
내 뒤에서 어머니가 빼꼼히 머리를 내밀었다.
“우리는 절에 다녀요. 죄송합니다.”
“네, 그렇군요.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머리를 마저 헹구고 방에서 머리를 말리는데,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세요?”
문을 열었다. 이번에도 낯선 아주머니다. 조금 전 방문했던 사람과 옷차림이 비슷하다.
“절에서 왔어요. 시주 좀 하시라고요.”
“저는 성당에 나가거든요. 죄송합니다.”
문을 닫으려 하자 아주머니가 다급히 말을 붙였다.
“아까는 절에 다닌다면서요!”
“네? 누가요?”
“아… 저… 그게…….”
“어머니는 절에 다니시고요, 저는 성당 다녀요. 근데 대체 어디서 오셨는데, 남의 집에 이렇게 함부로 들어와서 문을 두드리는 겁니까?”
아주머니를 내보내고 아예 대문을 잠갔다.
‘이슬람교라고 할 걸 그랬나? 그래서 이름이 무함마드라고 할걸.’ 꼭 이런 생각은 뒤늦게 떠오른다. CCTV를 돌려봤다. 이 사람들, 대문을 밀고 들어와서 거침없이 현관문을 당긴다. 열리지 않자 문을 두드렸다.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지?’ 시골이라 낮에는 대문을 항상 열어 놓는다. 예전엔 현관문도 잠그지 않았다. 작년 초 도어락으로 바꾸길 잘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초인종을 알아보고 있다. 어머니 혼자 계실 때, 잡상인이 오면 문을 열지 않고 화면을 보며 응대하는 편이 낫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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