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등산 모임, ‘일요회’가 재개되었다. 작년 고향 뒷산에서 초등학교 동창을 만난 후, 우리는 별다른 약속이 없는 주말이면, 산 정상 친구의 아지트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나중에 중학교 동창 포비가 합류했고, ‘모임에 이름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누군가의 말에 모임의 이름을 ‘일요회’라 붙였다. 찬 바람이 불고 역병이 기승을 부리면서 중단되었다가, 다시 만났을 때는 목련꽃이 하나둘 떨어지는 봄이었다.
약속 시각은 오전 열한 시. 넉넉잡아 40분이면 오르는 야트막한 산이지만, 오늘은 여기저기 둘러보고 구경도 하고 천천히 산을 오르고 싶어 아홉 시에 출발했다.
가는 길에 식자재 마트에서 얼음 컵을 샀다. 어제 양조장에서 청주를 받아왔는데, 시음해보니 그냥 마시는 것보다 온더록스로 먹는 게 더 좋았다. 구름이 잔뜩 끼고 바람이 차서 잠깐 고민했지만, 추우면 한 잔 더 마시면 된다. 알코올이 들어가면 추위는 곧 사라진다.
저만치 앞에 정상이 보였다.
“그봐! 내 말이 맞지? 내가 열시믄 온다고 했잖어.”
“아이구. 그럼 맨날 한 시간씩 일찍 온 겨?”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친구들이 먼저 와 있었다.
“뭐여. 느덜 언제 온 겨?”
“우리? 발써 와찌!”
손목을 걷어 시계를 봤다. 오전 열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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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제 어머니가 해 주신 부침개를 가져온 게 전부인데, 친구들은 찬합에 과일, 보쌈, 족발, 튀김, 각종 야채……, 여러 음식을 바리바리 싸 왔다.
“야. 이걸 어떻게 다 먹냐.”
오랜만에 만나도 하는 이야기는 변함없다. 이제 신기한 일도 새로운 일도 많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근황을 묻고 오랜 추억을 꺼내 한참 웃었다. 전에 했던 이야기인데, 또 해도 또 들어도 재미있다.
“맞다. 느네 그거 알어? 뻥까 연애헌댜.”
“뭐? 증말?”
“누구여? 어뜬 사람이여.”
그렇게 반려를 갈구하던 뻥까에게 드디어 피앙세가 생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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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무수한 선과 소개팅에 낙담한 뻥까는 지난겨울 트랙터 타이어를 자신이 살던 연립주택 공터에 갖다 놓고 퇴근하면 오함마로 두드려 패며 울분을 달랬다. 저녁이면 “퉁~ 퉁~” 울리는 소리는 생각보다 시끄러워 인근 주민에게 적잖은 항의를 받았다.
눈이 오던 어느 밤이었다. 뻥까는 술 생각이 나서 편의점에 갔다가, “신분증 집에 두고 왔다고! 이해가 안 돼? 머리가 나빠?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카운터에 소주를 올려놓고 행패를 부리는 취객 두 명의 뒷덜미를 잡고 가게 밖으로 끌고 나갔다.
“디질래? 느덜은 집에 으른도 읎냐!”
함박눈이 내리는 밤, 슬리퍼를 벗어 때릴 듯 위협하는 나시티에 반바지 입은 박박 머리 아저씨. 헐벗은 옷 밖으로 드러난 우람한 근육에 어린 취객들이 도망가고, 뻥까는 술을 사서 집으로 왔다. ‘저런 양아치도 애인이 있는데….’ 술이 썼다. 씁쓸한 밤이었다.
다음 날, 퇴근 후 타이어를 두드려 패는 뻥까에게 어떤 아저씨가 베지밀을 건넸다.
“고마워서 그려.”
“네?”
“어제 우리 편의점에서 행패 부리던 애들 쫓아 줬담서.”
“그게….”
“미안혀. 내 그동안 자네 오해했어. 생각해보니께 헬스장이고 뭐고 다 문 닫어서 이러고 있는 거 아녀. 장개는 들었고?”
편의점 사장님이었다. 뻥까는 그분이 소개해준 여자를 만났고, 연인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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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근데 함 비 달라 해도 비주지를 않어.”
“그려? 왜?”
“몰러.”
휴대폰이 울렸다. 뻥까다. 기막힌 타이밍이다. 자기 이야기하고 있는 걸 아나?
“어으~으으으~ 찬새미! 뭐혀!”
“술 마셔. 염생이하고 포비하고.”
“뭐여. 내려온 겨?”
“어. 너 연해한대매?”
“하지. 염생이가 그려?”
“어. 조금 전에 이야기 들어ㅆ….”
“찬새마. 너 이번 달에 시간 언제 되냐?”
“왜?”
“우리 아가씨랑 함 보게.”
“만나는 사람이랑 같이 보자고?”
초등학교 동창 염생이가 분노의 포효를 쏟아냈다.
“너 이 새끼! 내가 비 달라 할 때는 콧방귀도 안 뀌고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