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떻게 사냐?”

 

JJ 형이다. 그는 내 고등학교 선배이자 대학 과 선배이며 심지어 동아리 선배이기도 한데, 가끔 이렇게 뜬금없이 안부를 묻는다.

 

“그냥 뭐 그럭저럭 지내죠. 형은 어떻게 지내요?”

“나는 그냥 살아지고 있지. 이러다 사라질 거 같아 불안불안 혀. 연애는 하는 겨?”

“연애는 무슨…. 인제는 다 늙어빠져서 체력이 안 돼요.”

“지랄헌다. 모레 시간 어뗘? 저녁에.”

“목요일 저녁이요? ……, 네. 괜찮아요.”

“밥이나 같이 먹자. 술도 한잔허고.”

“그려요.”

 

약속 장소는 모교 근처 중국집. 고추잡채와 삼선 짬뽕 그리고 이과두주를 시켰다.

 

“캬! 옛날 생각난다. 너 빼갈 처음 먹고, “형! 목이 타는 거 같애!” 이럼서 호들갑 떨었잖어.”

 

테이블에 팔꿈치를 얹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홀(hall)로 퍼지는 중국집 특유의 화덕 소리와 웍을 다루는 소리는 기억을 오래전 대학 시절로 이끌었다. 이과두주 한 잔에 우리의 기억은 먼 곳을 더듬고 있었다.

 

JJ 형의 휴대폰이 울렸다. “응? 저녁 먹고 있지. ……, 저녁 아직 안 먹었어? ……, 그래? 핫핫핫! 그럼 이리 올래?” 전화기를 내려놓은 선배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대학원 후배가 이 근처에 있나벼. 저녁 안 먹었다는데, 같이 해도 되까?”

“아이구, 벌써 불러 놓구선 뭘 묻고 그려요. 괜찮어요.”

 

잠시 후, JJ 형의 대학원 후배가 왔다. 삼십 대 중반의 아가씨였다.

 

“인사해. 니네 과 선배여. 잘생겼지?”

 

JJ 형이 아가씨에게 나를 소개했다. 에효…, 형. 잘생겼다니요. 저도 매일 거울 봅니다.

 

 

--- ** --- ** ---

 

 

후배가 주문한 해물누룽지탕이 나왔다. “드셔 보세요. 요기도 되고 술안주로도 좋아요.” 후배는 작은 접시에 해물누룽지탕을 담아 JJ 형과 내게 건넸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운동화를 어떻게 세탁하느냐.’ 하는 문제가 화제에 올랐다. 예전에는 비누칠한 솔로 안팎을 박박 문질러 닦고 건조대에 걸어서 말렸는데, 지금은 그냥 빨래방에 맡긴다.

 

“맞어. 우리 안사람도 빨래방에 맡기는 거 같더라고.”

“세탁기 돌릴 때 그냥 같이 넣으면 되지 않아요?”

“세탁기에요?”

“네. 편하잖아요.”

“좋죠. 그러다 얼굴에 무좀도 생기고요.”

 

후배가 JJ 형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선배님…, 제가 무좀 있게 생겼나 봐요.”

 

웃고 떠들다 보니 시간이 늦었다. 후배를 보내고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샀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대로 헤어지기는 뭔가 아쉽다. 적당한 곳을 찾아 조금 걷다가 학교 연못가에 앉았다. 완연한 봄이다. 머리카락을 흔들며 이마를 간질이는 바람이 포근했다. 역병의 시대에도 CC라는 해로운 동물은 여전해서 탑돌이 하듯 주변을 배회하며 청춘의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너 구두 좋아 보인다?”

 

과거의 기억이 뇌리를 강타했다. 오래전, 선배는 같은 말로 내 구두를 보자고 했었다. “구두 샀어? 오! 좋아 보이는데! 줘봐.” 한쪽을 건네자, 그는 요모조모 살펴보다가 벌떡 일어서더니 신발을 연못에 집어 던졌다. 다짜고짜. 아무 전조도 없이.[각주:1] 그 장소가 바로 여기였다.

 

 “왜요! 또 집어 던지게?”

“아까비. 안 속네.”

“근데 후배는 왜 불렀어요? 어색한 연기까지 하면서.”

“티 났어?”

“그것도 눈치 못 채믄 등신이죠.”

“어…, 그게…, 우리 안사람이 엄명을 내렸거든. 너 얼른 장가보내라고.”

“형수가? 왜요?”

 

작년부터 JJ 형은 수제 맥주의 세계에 빠졌다. 미식가가 되어 곳곳의 브루어리를 찾아가고 맛을 보고 품평을 한다. 가끔 맛과 향에 빠져 생각보다 과음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내 핑계를 댔다고 한다. “찬샘이가 자꾸 붙잡잖어.” 형수는 ‘얘가 외롭나.’ 걱정되어 소개팅 자리를 마련하라고 JJ 형을 닦달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자리였다.

 

“사실 아까 걔 말여, 나보다 우리 안사람하고 더 친해.”

 

어쩐지…, 뭔가 좀 이상하다 싶었다.

 

 

  1. * 그리고 내게 구두 상품권을 건넸다. 그때 나는 졸업식 때 산 구두를 몇 년째 신고 있었는데, 뒤축이 다 닳은 구두를 신는 후배가 안쓰러웠던 거였다. [본문으로]

'섞일雜 글월文 (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군의 마음  (0) 2021.05.07
가을, 수락산  (2) 2021.04.30
너였어?  (0) 2021.04.11
일요회  (0) 2021.04.08
내가 언제!  (0) 2021.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