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b이 아버지가 되었다. 결혼한 지 4년 만의 경사다. 결혼 전부터 ‘아이는 하나가 좋니, 둘이 좋니….’ 떠들어서 허니문 베이비가 생기나 싶었는데, 오래도록 소식이 없었다. 신혼을 즐기고 싶은 마음에 피임을 하는 것인지, 노력하는데 잘 안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어서 2세 소식을 묻기 조심스러웠다.

어느 날 카톡 프로필이 ‘○○아, 우리에게 와줘서 고마워. 건강하게 만나자. 사랑해.’라는 문구가 새겨진 엽서 사진으로 바뀌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배경으로 공갈 젖꼭지를 문 아기 그림이 맨 위에 자리 잡은 엽서였다. 나는 활자 친화형 인간이라 메신저는 대화명으로 사람을 알아본다. 프로필 사진은 건성으로 봐서 Bob의 프로필이 언제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물어볼까 싶다가도 사소한 일도 미주알고주알 캐서 나르는 녀석이 말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지 싶어 참았다.

6월의 첫날, Bob에게서 연락이 왔다. 바쁜 와중에 걸려 온 전화여서 받지 못했다. 늦은 오후, 콜백을 하려고 휴대폰을 열었더니 카톡 알림 숫자가 세 자리 수에 육박했다. ‘무슨 일이지?’ 진동이 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단톡방인듯한데, 이렇게 사람들이 말을 쏟아내는 경우는 경사 보다는 조사가 대부분이어서 걱정이 앞섰다.

 

안녕하세요. ○○Bob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제가 드디어 아빠가 되었습니다. 3.2kg의 예쁜 딸로 아이도 산모도 건강합니다. 막중한 책임을 갖고 잘 키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80년대 학번과 90년대 초반 학번들의 번개 약속이나 등산 사진이 가끔 올라오는 한가한 단톡방이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바다 깊은 곳에 머물다 먹이활동 할 때나 한 번씩 떠오르는 심해 상어보다 부상(浮上) 횟수가 적은 2,000년대 학번들이 대거 등장했다. 말풍선 꼬리에 붙은 숫자나 지우던 음수형 인간들이 축하의 말을 쏟아냈다. 나도 그 틈에 슬쩍 끼었다.

 

Bob. 축하해. 너도 이제 곧 학부형이고만.


5분도 안 되어 전화벨이 울렸다. Bob이다.

“통화 가능혀?”
“어. 괜찮어. 축하혀. 이제 애 아부지고만.”
“하아! 말도 말어. 걱정의 대장정이었어.”
“왜?”
“애는 안 좋다 하지, 와이프는 아프지…, 산부인과 갈 때마다 걱정 한 보따리씩 안고 왔다니까. 한군데 괜찮으면 또 어디가 이상하다고 허고. 괜한 말 했다가 말이 씨가 될까 봐 누구헌테 말도 못허고, 아주 벙어리 냉가슴 앓듯 했지, 머.”
“지금은 어뗘.”
“와이프 몸이 안 좋아서 제왕 절개했는데, 괜찮댜.”
“아이구, 다행이다. 지금 병원이여?”
“어. 근데 진짜 다행인 게, 애가 외탁을 한 겨. 쌍커풀도 있어. 그리구…….”

주저리주저리 말이 끊이지 않았다.

--- ** --- ** ---



동생에게 조언을 얻어 아기 옷을 주문했다.
주문 완료 페이지가 뜨는 순간, Bob의 정체성이 떠올랐다. 떠버리! 샘이 많은 까르푸의 얼굴이 스쳐지났다.

“야. 내가 옷 사줬다는 말 허지 마라.”
“알었어, 인마. 내가 그 정도 눈치도 없겠냐?”

Bob의 호언장담이 못 미더웠다.

--- ** --- ** ---



“어뜨케 그럴 수 있냐? 응? 찬새마. 니가 어뜨케 그럴 수 있어~어! 응?”

밤 아홉 시 반, 한동안 연락이 안 되던 까르푸가 잔뜩 취한 목소리로 타박을 놓았다.

“술 마셨어?”
“마셨지. 속상해서 마셨지. 내 친구 우리 찬새미가 속상하게 해서 마셨지.”
“그래서 전화 안 받은 겨?”
“전화? 아녀. 내가 전화를 왜 안 받것냐. 머, 조금 바쁜 일이 있었는데, 다 지난 일이고, 내가 전화 안 받을 일이 뭐시가 있것냐.”
“지랄헌다. 왜? Bob 때매 그려?”
“야. 안 그냐? 우리 ○○이 났을 때는, 한마디 말도 없던 양반들이 다덜 왜 그런다냐. 너도 그러는 게 아녀.”
“왜? 뭘!”
“옷 사줬대매!”
“아이고, 친구야. 내가 그때 선물 사준다니까, 니가 비상금 바닥났다고 돈으로 달라고 했냐, 안 했냐.”
“아…!”

까르푸의 말투가 누그러졌다.

“단톡방 봤냐?”
“응? 왜?”
“함 가봐.”

 

축하해주시고 걱정해주신 선후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찬샘아, 고맙다.


Bob의 짤막한 감사 인사와 아기 옷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